답(答) 박경석 박사 서(書)
답(答) 박경석 박사 서(書)
  • 장상록
  • 승인 2017.08.20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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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도민일보에 나가는 내 글을 애독해주시는 분들 중엔 서울, 강릉, 예산은 물론 경북 영주에 사시는 분도 있다. 주인공은 박경석 박사다. 그가 지난 1일자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에 대해 짧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코멘트를 주었다. 그 핵심은, 이웃 국가 사이에 서로 피해를 주고받은 사실이 있고 그 보다 훨씬 오랜 기간을 우호관계 속에 보냈는데 피해의식과 적대감만 강조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자세인가에 대한 지적이었다. 나는 그의 견해에 공감한다.

 먼저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 한국이 일관되게 역사적 피해자였다는 시선은 분명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는 왜구(倭寇)의 피해와 잔학성을 얘기하지만 일본 사료에는 그 이전 신라구에 대한 언급이 적잖다. [일본기략(日本紀略)]에 나오는 내용이다. “811년 12월에 신라인 약 110명이 5척의 배로 고지카시마(小近島)에 침공해와 약 9명을 죽이고 100명을 사로잡았다.” 이 외에도 [일본후기]등의 기록에 나오는 신라인의 만행은 조선시대 삼포왜란 당시 일본인의 행태와 너무도 닮아있다. 하지만 일본인에게 공포와 증오를 각인한 사건은 따로 있다.

  여기 끔찍한 기록이 있다. “남자는 죽이고 여자는 포로로 하여 한곳에 모아 손에 구멍을 뚫고 가죽 띠로 엮어 연결하여 배에 매달아 갔다.” 과연 이런 만행을 저지른 자들은 누구인가.

  [일연성인주화찬]에서는 그 범인을 여몽 연합군으로 지목하고 있다.

  관련해 일본 규슈(九州) 북부에 위치한 이키(壹岐)섬에서는 예로부터 밤에 아이가 울며 떼를 쓰면 “무쿠리 고쿠리 도깨비가 와서 잡아간다.”며 겁을 줬다고 한다. 무쿠리는 일본어로 몽골을 뜻하며 고쿠리는 고려를 의미하는 단어다. 한국에서는 그것이 원(元)의 강요에 의한 것이었고 만행의 당사자도 몽골이라 얘기할지 모른다. 하지만 일본이 바라보는 것이나 객관적 사실과는 인식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 먼저, 원 세조 쿠빌라이에게 일본정벌에 나설 것을 처음 부추긴 당사자는 다름 아닌 고려인이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 고려군의 전투참여는 몽골군을 능가할 정도였다. 그것은 당시 원나라 군 사령관 쿠둔(忽敦)이 했다는 말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우리 원나라가 전투를 잘한다고 하지만 고려군의 활약보다 어찌 뛰어나다고 하겠는가?”

  그러한 고려군이 일본인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겠는가. 당시를 기록한 일본 그림에는 고려군의 잔인함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고려 말 왜구의 잔학성은 그런 점에서 비극적 데자뷰였던 셈이다. 1274년과 1281년 두 번에 걸친 여몽연합군의 침략은 일본인에게 그 후 오랜 시간 커다란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리고 그것은 후일 임진왜란의 출정 명분 중 하나가 된다.

 이웃 국가 사이의 갈등은 한·중·일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아일랜드인이 영국을 싫어하는 정도는 한국인의 일본에 대한 감정에 결코 못지않다. 폴란드인에게 독일과 러시아는 또 어떠한가. 그런 점에서 한·중·일만 특별히 문제될 것이 없다고 얘기할지 모른다. 임진, 병자 양란 이후 200년 이상 평화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세계사에 흔치 않은 우호의 시간이다. 그럼 무엇이 문제인가.

 나는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민족주의가 선이 되지 않는 시간이 오길 소망한다. 내가 쓴 글의 전제다. 약자의 민족주의는 그 자체로 선이 될 수 있지만 강자의 그것은 쇼비니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는 일본과 중국이 한국의 소중한 이웃이어야 하며 그를 위한 노력의 대상엔 당연히 한국이 포함된다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아직 한국의 민족주의가 완성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불행하게도 그것은 분단이 해소되지 않는 한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일본과 중국의 민족주의는 그런 점에서 분명 구분되어야 한다.

  일본의 극우민족주의나 중화민족주의에 대한 경계는 양국의 선량한 인민을 대상으로 한 것이 결코 아니다. 또한 만일 한국이 그와 유사한 잘못된 길로 간다면 나는 단연코 그에 반대할 것이다.

 나는 지금도 하이드파크에서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며 미소로 격려해주던 일본 노인들의 체온을 잊지 않고 있다.

장상록<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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