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보다 더 뜨거운 세월”
“폭염보다 더 뜨거운 세월”
  • 이흥래
  • 승인 2017.08.16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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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8월 중순경, 필자는 33년여에 걸친 방송기자 생활을 마감하는 방송에서 ‘국민이 깨어있어야 나라를 지킬 수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 무렵은 아직 탄핵정국이 시작되기 전이지만 이미 7월 하순부터 미르와 K스포츠 재단에 수상쩍은 거액의 출연금이 몰렸다는 보도가 나오고 사드배치를 둘러싼 국가적 갈등이 확산되는 와중이었다. 특히 세월호 관련 의혹 해명 요구에도 불통과 공안몰이식 통치에만 매달려온 전 정권을 보면서 ‘깨어있는 국민만이 올바른 지도자를 선택하고 그래야만이 나라가 산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물론 필자만의 불행한 예견은 아니었겠지만 결국 박근혜 정부는 촛불혁명의 바람 앞에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누군가가 그 나라의 민도에 걸맞는 지도자를 선택한다고 했는데 그 선택의 댓가를 우리는 지난해 혹독하게 치뤘던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이후 시작된 구 정권의 적폐청산 작업이 속도를 더해가고 있다. 그 결과가 만족스러울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과거 이명박.박근혜 정권동안 쌓여진 의혹 덩어리들은 조사가 진행되면서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을 비롯해서 간첩조작과 세월호 침몰 그리고 사대강과 자원외교, 방위산업 비리 등 그야말로 세고도 철철 넘치는 적폐덩어리들이 드러나면서 도대체 그 시작과 뿌리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이같은 구 정권의 헌정질서 파괴와 국정농단 행태를 보면서 많은 국민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심한 억압과 공포, 그리고 퇴행과 비정상의 나날을 보냈는지 절실히 실감하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이같은 적폐청산 작업은 순조롭게 이뤄질 수 있을까. 얼마전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1심 판결에 대한 거센 논란처럼 촛불혁명을 치른 이들의 기대와 실제 현실은 여전히 멀어 보이는듯 하다. 비단 이같은 사법적 판단뿐만 아니라 구 정권의 수족 노릇을 해온 거대 정당이 여전히 국정의 주요 세력으로 남아있고, 세대나 지역적으로 과거 정권에 향수를 느끼는 세력이 엄존하는 현실도 개혁의 고비가 될 수 있다. 특히 현재 뇌물사건 재판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법리공방의 결과에 따라서는 촛불혁명의 의미마져 무너져 내릴지 누가 알것인가.

우리는 그동안 몇 차례에 걸쳐 과거의 역사와 결연히 결별할 기회를 가졌음에도 이를 어영부영 흘려보낸바 있다. 이제 민족사의 정기까지는 그렇다쳐도 부정과 비정상을 어느 정도까지는 바로잡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럴려면 관련자는 빠짐없이, 심판은 정당하게 그리고 그 결과는 정의롭도록 하기 위한 국민적 지혜와 판단을 이쯤에서 다시 모아야 하지 않을까. 고작 지도자 한 사람이 바뀌었을 뿐 아직도 대부분이 그대로인 세상. 시간이 흐르면서 촛불혁명 당시의 국민적 개혁요구가 시들해지고, 잡다한 핑계로 과거의 적폐가 정당화 되면 우리는 폭염보다 더 뜨거운 분노의 세월을 보내야 하지 않을까.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독일인들이 한 지도자의 광기아래서 유태인 학살이라는 인류사적 범죄에 가담했던 역사적 사실은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흥래 전북대학교산학협력단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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