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영혼은 죽지 않는다
말의 영혼은 죽지 않는다
  • 이동희
  • 승인 2017.08.15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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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따금 들리는 소식이지만,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자살했다는 뉴스를 접하면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 없다. 잘잘못이 어느 쪽에 있건 죽음은 사태 해결의 본질이 아니라, 진실을 영원한 침묵 속으로 가두려는 속셈이겠지만, 오히려 진실은 ‘가지도 오지도[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미궁에 빠뜨리는 격이기 때문이다.

 동양에서는 자살한 사람에 대하여 ‘오죽했으면 죽기까지 했겠느냐?’며 죽은 사람을 옹호하거나 동정하는 여론이 우세한 편이라지만, 서양에서는 그 반대라고 한다. 오히려 자살한 사람을 귀책(歸責)의 당사자로 여기는 경향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의식이건, 사물 현상이건 여러 가지로 상반된 문화현상을 보이는 동서양이 자살에 대한 반응도 이렇게 다르다. 이것만 보아도 자살은 진정한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새로운 문제의 발단이라 여길 만하다.

 그래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죽음이 최후의 수단은 아니라는 것이다. 죽음보다 더 깊은 심연(深淵)에 ‘말’이 살아있다는 진실을 잊는 데서 비극은 일어난다. 죽음은 생물학적인 단절을 뜻하지만, 말은 아무리 죽고, 죽이고, 불태워 버려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설사 말의 당사자가 죽고, 말의 당사자를 죽이고, 말의 통로를 불태워 버려도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오늘 불의하다 여겼던 말이 내일은 정의의 증거가 되고, 오늘 정의로웠다 여겼던 말이 내일은 불의의 징표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말의 길이다.

 그래서 진실을 감추거나, 그 진실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자살은 결코 옳은 해결책이 아니다. 영원히 죽지 않는 말만이 정의와 불의의 심판자가 될 수 있을 뿐이다. 근래에도 이런 상반된 말의 역전 현상을 접하며 진실을 밝히는 데 말보다 무서운 것이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인간의 심연에는 자의적으로 훼손할 수 없는 말의 영혼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부안지역 학교에서 교사에 의한 학생 성추행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급기야 그런 추문의 당사자로 지목된 교사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여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교사의 가족들은 ‘억울하다’며 진실 규명을 소청하고 있으며, 교사를 고발했던 일부 학생들은 ‘사실을 왜곡 과장했다’며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친다고 한다. 주장과 반론이 거칠게 오가는 사이에 당사자는 덜컥 죽음을 택했다. 말의 영혼이 제 길을 찾을 때까지 조금 더 참고 기다렸으면 어땠을까, 안타까운 심정 금할 길 없다.

 생생한 역사의 기록과 이를 바탕으로 이뤄진 숱한 창작물[시, 소설, 영화, 연극, 회화, …]들이 넘쳐나, 알 사람은 다 아는 현대사의 비극, 그게 바로 ‘5·18광주민주항쟁’의 진실이다. 설사 이런 창작물이 아니어도 국민의 군대로 하여금 그 국민을 살육게 한 행위는 이미 법의 심판을 받아 범죄로 낙인 찍혔으며, 그 범죄자는 한때 누렸던 ‘대통령으로서의 예우’를 박탈당한 파렴치한에 불과하다. 그런 자가 자신의 행위를 부정, 왜곡, 호도하는 소위 자서전을 출판했다. 이 자서전이 법원에서 ‘출판금지’ 처분을 받아 불행 중 다행이라 할 것이다.

 이 두 가지 사례는 모두 인간의 심연에 ‘말의 영혼’이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하고 있지만, 그 동기와 결과는 전혀 상반된 것이다. 전자는 자신을 죽임으로써 왜곡된 말의 통로마저 사라지거나 바로잡힐 것이라 여겼다면, 후자는 왜곡된 말의 통로를 열려둠으로써 역사의 진실을 묻어버리거나, 자신이 맞이할 생물학적 죽음마저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리라.

 그러나 말의 영혼은 결코 죽지 않는다는 이 평범한 진리를 외면함으로써, 말로써 밝혀야 할 진실마저 외면하고 말았다. 진실을 왜곡시키려는 말도, 왜곡된 진실을 바로 펴려는 말도 죽지 않는다. 말은 영적 존재인 인간만이 지녔다. 언어의 영혼이 오염되는 것을 경계할 때, 삶이 바른길에 설 수 있다.

 파블로 네루다는 오염된 언어의 영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그녀는 말할 줄 몰랐기에 말하지 않았다/ 그녀의 두 눈은 아득한 사랑의 빛이었고/ 그녀의 두 팔은 한 쌍의 황옥으로 빚어졌고/ 그녀의 입술은 산홋빛으로 반짝였다/ 그녀는 갑자기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강에 들어서자 그녀는 금세 깨끗해져/ 빗속의 하얀 돌처럼 빛났다/ 그녀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다시 헤엄쳤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을 향해 죽음을 향해 헤엄쳐 갔다”<시「인어와 술꾼들의 대화」부분>

 인어의 언어를 인간의 언어로 왜곡시킬 수 없듯이, 그 역도 마찬가지다. 언어의 영혼이 오염된 인간은 살아도 죽은 것이며, 죽어도 영원히 죽지 않는다.

 이동희<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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