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에 대하여(3)
우정에 대하여(3)
  • 최정호
  • 승인 2017.08.14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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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 삶은 습관적이다. 우리들은 어린 시절부터 주위에 있는 가까운 사람과 우정을 만들고 허물기를 반복해 왔다. 오랫동안 사귀어보고 선택하여 우정을 쌓은 것이 아니라 일단 친구가 먼저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우정은 그들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습관에 의해 발생한다. 나에게 관심을 보이고 나를 특별한 사람으로 대해주는 사람의 친구가 되지 않으려고 비범한 지성과 결단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의 우정은 실망과 배신의 기억을 한다. 우발적으로 발생한 우정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견고해져서 처음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망각하게 된다. 테스토스테론의 혈중 농도가 떨어지는 노년이 되어서야 우리는 욕망의 사슬이 느슨해진 덕택에 악덕과 미덕, 아첨과 환대, 겸손과 무지, 인색함과 후덕함을 구분할 야유가 가까스로 생긴다. 습관이나 이해관계의 결합에 의한 동맹을 유덕한 우정과 비교할 수 있는 지성이 발현할 주관적 환경이 조성된다. 그러므로 청년의 우정과 노년의 우정은 그 양과 질이 다르다.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 (논어) 사람이 어울려 살아가면서 도리에 맞으면 서로 화합하지만, 도리에 맞지 않으면 따르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소인은 자신의 이익에 따라 같이 어울리지만, 이해관계에 따라 언제든지 화합하지 않고 등을 돌린다. 우정은 소인이 아닌 군자의 특권이다. 다름이 없는 우정은 우정이 아니다. 친구의 의견에 반대할 만한 견해가 없다면 친구의 자격이 없다.

 훌륭한 반대자는 지성이 빈곤한 찬성자보다 귀한 친구이다. 반대를 통하여 자신의 견해를 반성하고 다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한 친구는 처세술로 얻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삶을 위한 동반자이다. 친구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불꽃이 튀는 논쟁과 다툼은 그들에게 모멸감을 주지도 않고 낭패감을 주지 않는다. 논쟁이 끝나면 둘은 상대방으로 인하여 영혼의 상승을 체험하고, 빈곤한 자신의 편견은 우호적인 다름의 단비를 만나 인격이 풍성해짐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정치나 문학, 예술에 대해 현저하게 다른 견해를 가진다 해도 상관없지만, 가난한 사람에게 가혹하게 대한다든지, 여자와 아이에게 함부로 하는 자와 우정을 지속할 수 없는 이유는 우정은 군자들만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친구를 가장 경멸하게 되는 때는 친구가 저급한 행동과 생각을 할 때이다. 친구가 저급해지는 것은 내가 그렇게 되는 것이기에 참을 수 없는 것이다. 연애는 상대방이 자신이 아닌 다른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을 질투하여 싫어하지만 우정은 친구가 다른 훌륭한 사람을 만나는 것을 오히려 반긴다. 왜냐하면 친구의 친구는 나의 친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지러운 현대사회는 사람들을 노예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몇몇 사람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사람이 자신을 상품대에 진열품으로 올려놓고 팔아야 하는 처지가 되어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가 꿀을 생산하는 벌집이 되어가고 있어, 개미나 벌이 되어버린 사람들에게 어떻게 자유로운 정신을 기대하고 내면세계의 풍요로움을 바랄 수 있겠는가? 이해에 의해 결정되는 계산적 관계가 확산하여 우정은 타락하고 동맹이 우정을 밀어내고 있다. 군자는 멸종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환경에 변화가 없다면 우리는 <고담>시에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백 명의 베트맨도 천명의 슈퍼맨도 고담시를 구원할 수 없다. 형편이 어려워질수록 협조자와 조력자가 필요해지고 인간애와 도덕은 자취를 감추게 된다. 키케로에 따르면 “자연이 우리에게 우정을 준 것은 악덕의 동반자가 아니라 미덕의 조력자가 되라는 것”이다.

 전두환과 노태우의 협잡을 우리는 우정이라고 볼 수 없다. <효용성의 우정>이 우연한 기회에 만든, 가느다란 이해의 밧줄에 매여 있다면 <참된 우정>은 필연적으로 맺어진 동시에 자유로운 관계이다. 이들 사이에 계약이나 언약이 필요 없다. 그들은 서로 베푼 선심에 의존하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 훌륭한 우정은 인간성에 대한 귀족주의적 관념에서 온다. 가장 좋은 친구는 내가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친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은 쉽게 이루어질 수 있지만 <우정>은 천천히 읽어가는 과일이다.

 최정호<최정호 성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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