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책임과 실천: 문경지교(刎頸之交)와 분열
정치의 책임과 실천: 문경지교(刎頸之交)와 분열
  • 정항석
  • 승인 2017.08.13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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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기(史記)>의 <염파인상여전(廉頗藺相如傳>에 전하는 것으로 목을 베어 생사를 같이 할 수 있는 사귐을 뜻한다.

 전국시대戰國時代 B.C.403-B.C.221년)에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 B.C.356-B.C.311)때의 일이다. 초(楚)나라에 변화씨(卞和氏)란 사람이 형산(荊山)에서 봉황이 돌 위에 깃들이는 걸 보고 왕에게 바쳤다는 화씨지벽(和氏之璧)이라는 옥이 있었다. 어찌하여 그 옥돌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의 손에 들어갔고, 이 돌을 탐내는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 B.C.325-B.C.250)이 15개의 성(城)과 교환하자고 하였다. 이 때문에 진나라와 조나라 사이에는 긴장이 조성되었다. 성과 옥돌을 진정으로 바꾸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옥돌을 받고 국토를 넘겨줄 리가 만무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연유하여 화씨지벽은 연성지벽(連城之壁)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국력이 문제이었다. 어째든 이 외교문제를 풀어야 했고 사신으로 누가 보내져야 하는가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 ‘싸우자,’ ‘주자’ 하는 등으로 갈리었다. 그 때이었다.

 “제 식객 중에 인상여(藺相如 ?-?)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를 보내시지요!”

 환관령(宦官令) 목현(繆賢)의 제안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인상여는 사신으로 가고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에게 빼앗길 뻔했던 천하 명옥(名玉)인 화씨지벽(和氏之璧)을 조나라가 가지게 하였다. 그렇게 세운 공으로 그는 상대부(上大夫)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3년 후(B.C. 280), 혜문왕을 폄하(貶下)하려는 소양왕을 가로막고 나서서 오히려 그에게 망신을 주었다. 그리고 또 다시 상경(上卿)에 오르게 되었다. 목숨을 걸었던 기개가 드러난 것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또 다른 문제에 직면했다. 문관에 인상여가 있다면 무관에는 장군 염파(廉頗)가 있었다. 자기보다 더 높아진 것에 부화가 치민 염파가 말했다.  

 “나는 전장을 누비며 칼과 창으로 적을 무찔렀다. 그런데 입 밖에 놀린 것이 없는 인상여 따위가 나보다 높은 벼슬에 있다니 어찌 분하지 않으랴... 그런 놈 밑에 있을 수 없다. 언젠가 만나면 그 놈을 보면 개망신을 줄 것이다.”

 이 말을 전해들은 인상여는 아무 말이 없었고 멀리서도 염파를 피했다. 이 같은 인상여의 행동에 한 부하가 실망하였고 그와 결별하기를 청했다. 그러자 인상여가 말했다.

 “자네는 염파 장군과 진나라 소양왕 중에서 누가 더 두렵다고 보는가?”

 그는 말을 이었다.

 “나는 소양왕도 두려워하지 않았네. 해서 소양왕을 망신주기도 했고 한데 어찌 내가 일개 장군을 두려워하겠는가!”

 그의 말은 이랬다. 강국인 진나라가 조나라를 침공하지 않는 것은 장군 염파와 상경대부 인상여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약 이 두 사람의 분열한 모습이 나라 밖에 알려진다면 나라꼴도 아니지만 망국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런 말은 전해들은 염파는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는 스스로 윗옷을 벗고 태형(笞刑)에 쓰이는 형장(荊杖)을 지고 인상여를 찾아가서 무릎을 꿇고 죄를 물었다.

 “제가 미련해서 대인의 높은 뜻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벌을 주시오.”

 염파는 진심으로 사죄했다. 인상여는 그를 일으켜주었고 이로 부터 소중한 벗이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를 일러 ‘문경지교(刎頸之交)’라고 한다.

 위의 핵심은 이렇다. 국가를 위한 진심어린 행정가와 정치가 그리고 군인의 자세이다. 첫째, 목현은 인재를 알아보았고 그가 능력을 발휘하도록 도와주었다. 둘째, 혜문왕은 귀천을 가리지 않고 공헌에 따라 공정한 치정(治政)하였다. 셋째, 염파는 자신의 무지를 깨달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배워 진정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인상여는 분열을 막기 위해서 자신의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았다. 이렇다. 개인적으로는 친분의 정을 나타낼지 모르지만 국가적으로 보면 문경지교의 대조적 어휘는 분열이 된다.

 요즘에야 아무리 친하다 하여 ‘목숨을 건 교우관계’를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정치가에서는 이러한 수준은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늘 반복적이지만, 어떠한 결론에 이르기 전에는 어떠한 말도 나올 수 있다. 그것이 민주사회의 면모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가적 혹은 국민적 의견이 수렴되면 적어도 절대적 다수를 위한 합의에 따라 통일된 목소리를 내어야 한다. 한데, 정치가들은 자신의 견해가 관철되지 않거나 특정 당의 의견이 수용되지 않을 것 같으면 원외에서 다른 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는 외국에서까지 나가서 볼멘 소리를 한다. 대한민국의 국회의사당은 물론이고 공공기관은 크기에 절대로 작지 않다. 전세계 어느 국가의 국회와 비교해도 크기의 손색은 없다. 굳이 나갈 까닭이 없다. 의사교환은 치열할수록 좋다. 그만큼 국가를 위한다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하지만, 의견교환은 당연이 설득과 설명이 동반된 논리적 과정이 있어야 한다.

 한데, 근자에 들어서면 일부에 국한되지만 파장을 크게 하는 특정 정치인들이 공인으로서의 보여주어서는 안 될 사적 견해를 여과도 검증도 없이 감정적 속내를 비취는 무제절적 발언을 하고 있다. 그것도 아무나 볼 수 있는 공간에서 선동적인 문구 투성이다. 여전히 ‘아니면 말고 식’의 되풀이이다. 말하자면 분열을 조장하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3분(分)의 시대에 살고 있다. i)민족 분단의 아픔, ii)경제 분배의 균열, 그리고 ii)사회 분열의 상처가 그것이다. i)은 나라 밖의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하더라도 ii)와 iii)은 내부의 문제이다. 내부 갈등은 있을 수 있지만 풀지 못한 내적 갈등은 없다. 제발 안에서 조용히 논의를 통한 생산적 화합을 바란다.

 정항석 (캠브리지대 연구학자, 전 대통령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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