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보시’와 ‘지음’
‘칠보시’와 ‘지음’
  • 나영주
  • 승인 2017.08.02 17: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국의 삼국시대 이야기다. 조조의 큰아들 조비는 조조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다. 조비는 아버지 조조가 생전에 자신보다 더 예뻐하던 둘째 동생 조식이 눈엣가시였다. 조비는 조조가 죽자마자 조식을 죽이려고 했다. 조비는 서슬 퍼런 칼을 조식의 목에 들이댔다. 탁월한 시인이었던 조식에게 절명의 순간의 마지막 말을 시로 읊어보라고 했다. 일곱 걸음 만에 시를 읊으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는 말과 함께.

 조식은 일곱 걸음을 떼면서 시를 읊었다. ‘콩깍지를 태워 콩을 삶으니/ 콩이 솥에서 울면서 말하는구나/ 본디 한 뿌리에서 나고 자랐는데/ 어찌하여 불을 재촉하여 이리도 끓이는고.’ 그 유명한 칠보시(七步詩)다. 친동생을 죽이려던 냉혈한 조비의 마음이 흔들렸다. 조비는 동생을 살려줬다.

 은유(metaphor)의 쓰임새는 많다. 사람들은 직설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 은유를 사용한다. 조식의 경우처럼 잘만 쓰면 효과는 좋다. 백날 논리적인 말하기와 글쓰기를 하여도, 시의 적절한 ‘에둘러’ 표현하기를 당해내지 못한다. 조조를 닮아 머리가 비상했던 조비에게 조식이 제아무리 논리적으로 변명했어도,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시인이 아닌 보통사람도 은유를 많이 쓴다. 심지어 이성과 논리의 영역인 법률가도 은유를 활용한다. 변호사들도 피고인을 위해 변론을 할 때 판사의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으로 은유를 활용하기도 한다. 법원장이나 검사장의 퇴임식에서 ‘평소 이 사람이 낭만적인 사람이었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문학적 수사가 자주 등장한다.

 논리와 이성으로 짜여진 판결문에도 은유는 등장한다. 김정주 넥슨 대표로부터 뇌물을 받아 130억대의 주식 대박을 터트린 진경준 전 검사장의 1심 판결문에는 ‘지음(知音)’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중국 춘추시대 거문고로 유명한 백아와 그의 친구 종자기의 일화에서 비롯된 ‘은유’다. 백아가 즉석에서 거문고로 어떤 음악을 연주하여도, 친구인 백아가 단번에 알아듣고 곡을 해석했다는 일화다.

 물론 1심 판결문에는 진경준 전 검사장과 김정주 대표가 고등학교 때부터 알게 되어 대학생활 내내 친하게 지냈고, 30여 년 동안 수많은 경험과 취미생활을 공유하고 동반 여행을 자주 다녔으며, 가족들 간에 서로 친밀하게 교류한 ‘지음’의 관계에 있는 점 등을 감안할 때 뇌물죄의 직무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구구절절한 내용이 들어 있긴 하다. 하지만 ‘지음’이란 단어는 법적 논리구성을 흩트리면서도 역설적으로 논리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부분을 우회한다. 비겁하다는 비판, 심지어 ‘나도 김정주같이 돈 많은 지음이 있었으면’ 하는 국민들의 조롱이 쏟아졌다. 다행히(?) 2심 재판부는 뇌물수수죄를 인정했다. 검사의 직무는 포괄적이기 때문에 ‘지음’을 들먹일 수 없다는 취지다.

 얼마 전 문무일 검찰총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임명장을 받는 자리에서 뜬금없이 ‘한시’를 읊었다. 4월 하늘에 바라는 여러 사람들의 마음이 제각각이어서 하늘 노릇하기 힘들다는 내용이다. 적극적인 검찰개혁을 주문하는 대통령 앞에서 읊은 시에 대해 논란이 분분하다. 문 총장의 은유가 ‘칠보시’의 절절한 마음인지, ‘지음’의 변명인지는 앞으로의 행보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나영주<법률사무소 신세계 대표변호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