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역사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 장상록
  • 승인 2017.07.31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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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숙주가 일본을 다녀온 것은 세종(世宗) 재위 시였다. 시문에 능할 뿐 아니라 일본어도 잘 했던 그는 일본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그런 그가 일본에 다녀온 소회를 담은 여행기인 [해동제국기(海東諸國記)]를 쓴 것은 그의 말년인 성종(成宗)때이다. 그가 당시 책을 쓴 이유는 원로로서의 책임감도 상당부분 자리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인지 그는 성종 종묘에 배향돼 있다. 그는 자신이 본 일본에 대해 평가와 함께 왕에 대한 당부를 담고 있다.

  “그들의 습성은 강하고 사나우며, 무술에 정련하고 주즙(舟楫)에 익숙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와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게 되었으니, 그들을 만약 도리대로 잘 어루만져 주면 예절을 차려 조빙(朝聘)하고, 그렇지 못하면, 문득 함부로 표략(剽掠)을 하였던 것입니다. 전조(고려) 말기에 국정이 문란하여 그들을 잘 어루만져 주지 않았더니 그들이 연해 지역 수천 리 땅을 침범하여 쑥밭으로 만들곤 하였습니다.”

  후일 신숙주의 예언은 적중한다. 성종이 잠들어있던 선릉(宣陵)은 임진왜란으로 파헤쳐지고 시신은 불태워진다. 왕이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한 전대미문의 일이 벌어진 것이다.

  더욱 불행한 것은 그로부터 불과 한 세대 정도가 지난 시점에서 당한 병자호란이다.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신숙주와 같은 혜안 있는 지도자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정묘·병자호란이 있던 그 시기, 유럽에서는 ‘30년 전쟁’의 피비린내가 대륙을 휩쓸고 있었다. 1648년 마침내 전쟁이 종결된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나온 것이 베스트팔렌 조약이다.

  이것이 주목받는 이유는 이때 비로소 근대적 주권국가 개념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30년 전쟁은 참혹한 피의 대가로 얻은 인류사의 성과물이 존재하고 있다. 조선에서 있었던 양대 참화는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 줬는가. 베스트팔렌 조약이 체결되고 218년이 되던 해 조선에서 미국 상선 한 척이 불에 탄다. 제너럴 셔먼호다. 이때 주권국가 개념에 대한 서구와 조선의 인식차이가 표면화 된다. 당시, 상황을 파악한 미국은 청을 통해 문제해결에 나선다.

  이때 미국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답변이 나온다. “조선은 청의 속방(屬邦)이나 내치는 자주다.”

  주권국가와 식민지 개념으로 모든 것을 설명하는 서구인들에게 이 말은 매우 모호하고 모순되는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제너럴 셔먼호 사건이 발생하고 5년 후에 신미양요가 발생했던 것은 그러한 인식차이에 대한 시간적 간극 때문이었다. 그것은 적어도 조선이 멸망하는 순간까지 일관되게 조선을 옥죄는 외교적 족쇄로 남았다.

  위안부, 사드, 코리아 패싱 문제는 물론 북핵문제와 향후 남북통일에 대한 주변국의 입장차까지 어느 하나 쉬운 문제가 없다. 주변엔 여전히 우리에 비해 거대한 힘을 가진 존재들이 상존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들과의 평화적 공존이지만 역사의 교훈은 언제나 그것이 깨진 것은 우리의 의사와 무관했다는 것이다. 외부에서 보는 현재 한반도 모습은 화약고 위에 있다.

  그럼에도 내부의 모습은 너무도 평온하다. 자신감일까. 아니면 어떤 믿음.

  후쿠야마(F. Fukuyama)는 [역사의 종언]에서 공산주의 체제의 붕괴는 자유민주주의의 ‘최종적 승리’이자 ‘역사의 종언’이라 단언하고 있다. 덧붙여 그는 프랑스 혁명 정신을 구현한 나폴레옹군이 절대주의 국가인 프러시아를 격파한 1806년 예나전투에서 이미 ‘역사는 끝났다’고 얘기하고 있다. 그가 비록 ‘지역적 조정’이라는 개념으로 예외를 한시적으로 설정해놨지만 ‘민주주의도 자본주의도 아닌 미래를 떠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그의 말이 공허한 지역이 존재한다. 바로 한반도다. 공산주의를 표방하는 왕조국가가 북녘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후쿠야마의 얘기대로라면 북한이 남한에 흡수되는 것이 역사의 필연이다.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다. 마르크스의 해석과 부합하지 않는 한국사의 전개과정이 후쿠야마의 분석과는 과연 일치할까.

  역사를 통해 과거를 배우고 미래를 대비하는 것은 결과에 대한 책임이 오롯이 우리 자신에게 돌아오기 때문이다.

 장상록 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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