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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심플한 현대미술
이문수 전북도립미술관 학예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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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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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과 권력과 미술은 항상 동행했다. 가끔은 은밀하게 대부분은 노골적으로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어왔다. 돈과 힘이 있는 곳에는 미술이 있었다. 미술과 자본이 사이좋게 동거할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서로 주고받을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배고픈 미술가들은 일자리를 통해 돈을 벌어야 했고, 권력자는 뭔가 ‘있어 보이는 방식’으로 자신을 과시하고 싶었다.

 그래도 예술은 지향해야 할 가치의 지점을 향해 의미를 찾고, 의미에 살고, 그 의미를 후세에 전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세상은 완성품이 아니다. 세상은 변하고 움직이며, 어떤 이야기도 완결될 수 없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밀물과 썰물이 지형을 바꾸듯이, 과정에서 모든 것은 변한다.

 역사의 부침 속에서, 현대사회는 우리가 진리라고 여겨왔던 많은 것들과 합리성과 이성에 근거한 담론체계도 의심스럽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게 혼란스럽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사회적·역사적 요인 속에서 예술은 결코 단선적으로 흐르지 않는다. 삶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저마다 다르게 바라보고 다르게 판단한다. 여러 시각과 해석이 공존한다. 그리고 재능보다 중요한 휴머니즘적 태도를 보이고 창작한다.

 <의외로 심플한 현대미술> 전은 다양한 표현 방법으로 자신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는 재기발랄한 미술가 15명, 이들의 진한 채취를 담고 있는 독창적인 현대미술 작품 75점으로 구성했다. 그 속에는 세상을 둘러싼 해석과 꿈, 욕망이 담겨있다.

 김재각은 어린 시절에 하늘의 구름을 보면서 수많은 형상을 찾았다. 그것은 그의 경험에서 비롯한 형상이다. 수많은 선이 모여서 면과 덩어리를 이루고 있고 투과성과 중첩으로 바라보는 시점에 따라 다른 형상으로 보인다. 그래서 관람자는 각자의 경험에 따라 다른 형상으로 인식할 수 있다.

 문민은 어느 철공장에서 20년간 일하던 가장의 망치를 활용했다. 땀과 눈물이 배어 있는 베이비붐 세대 아버지의 자화상이다.

 박찬국의 궤적 드로잉은 캔버스 위에 유한한 존재의 반복적 운동성을 나타내고 있다. 서로 충돌하면서 움직이는 원형적 형태를 통해서 절대 완벽하지 않은 모든 사물의 우연성을 이야기한다.

 서완호는 비닐 안에 갇혀있는 사람들은 고독과 소외, 서로 서로에게 폐쇄적인 현시대를 사는 우리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서웅주의 작업은 평면인 캔버스가 구겨져 보이는 착시현상을 일으킨다. 줄무늬 색과 배경색의 구분을 통해 심리적 판단과정에서의 선입견을 꼬집고 있다. 유화물감으로 정교하게 그려진 회화적 환영은 결국 허상에 불과하지만, 본질을 파악하는 실마리는 언제나 허상에서 출발한다.

 임희성은 투명한 재료인 비닐에 흔적을 남기고, 6~10번 겹쳐서 새로운 산수화를 구현했다. 가족 모습에는 산수의 공간과 시간이 그대로 담겨 있다.

 유용상은 일회용 종이컵과 여성 혹은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립스틱 자국의 미묘한 만남. 현대인들의 일회적인 사랑과 순간적 욕망에 담겨있는 영원성에 대한 이율배반적인 갈망을 드러내고 있다.

 정지필은 젊은 사진가로서 생활을 위해 사진기술을 활용해서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다. 어느 날 명품 브랜드 출시 행사 사진을 촬영하면서 ‘아름다운 것들을 찍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의 주머니 속 동전을 사진기술과 지식을 동원해서 아름답게 찍고 있다.

 차건우는 마네의 <피리 부는 소년>의 형상을 살찐 쥐로 의인화했다. 쥐를 현혹해 끌고 가는 피리 부는 살찐 쥐는 부정과 비리를 일삼는 고위층을 상징한다. 끌려가는 쥐들은 권력층에게 아첨하며 그를 따르는 무리다.

 최원석의 ‘외로운 조지’는 갈라파고스 섬에서 살던 마지막 육지 거북이. 현재 그 종은 멸종했다. 현실과 어울리지 않는 고대 생물체 같은 모습으로 150년을 살았다. 아마 숨비소리를 내면서 외롭게 살았을 것이다. 관계된 모든 것이 사라진 상황에서 수명까지 길다면, 그보다 더한 저주가 어디 있겠는가.

 현대미술의 동력은 다양성에 있다. 현시대가 불확정성과 모호함으로 치장된 시대이므로 탈 맥락을 요구하고 있고, 현대미술은 그 요구들을 수용해서 표현하기 때문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현대미술은 편견이나 상식을 내려놓고 바라보면 의외로 심플하다.

 마치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칼로 자르는 것처럼.

 이문수<전북도립미술관 학예연구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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