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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시인이 서야 할 자리
이동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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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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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소불위의 권력을 동원하여 문화 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었고, 이 리스트에 의해서 정권이 국정을 농단했다는 사실이 사법부의 판단으로 속속 입증되고 있다. 블랙리스트란 무엇인가? 쉽게 말해서 정권의 입맛에 맞는, 예쁜 털 박힌 놈에겐 떡 하나 앵겨주고[안겨 주고가 아니다], 정권의 헛발질에 어깃장을 놓는, 미운털 박힌 놈은 왕따를 시키는, 뒷골목 어깨들의 짓거리를 일컫는 말에 불과하다.

 그 반작용이자 사필귀정이겠지만, 국회의원으로 명성이 자자하던 시인이 문화 예술계의 수장이 되었다. 이제는 떡을 주건, 떡고물을 묻히건 미운털을 찍어내던 블랙리스트 대신, 혹여 예쁜 털만 선호하는 화이트리스트로 또 다른 역차별을 기획하지 않으리라 믿는다. 그런 믿음에도 관변을 어슬렁거리며 호위무사를 자처하는 시인들은 없었으면 한다.

 시인[작가]들이 자리해야 할 곳은 따로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에 살면서 분단의 현실을 외면하는 시인의 존재 이유가 무엇일까? 자랑을 일삼던 단일민족의 분단이 반세기를 넘어 철천지원수로 갈라섰음에도 민족의 일치를 노래하지 않는 시는 어디로 갔을까? 선제 타격이네, 전쟁불사를 함부로 거론하는 정치인에 대해서 한 마디 꾸중도 내놓지 못하는 시인의 사명은 무엇일까? ‘햇볕정책’이 무슨 전염병균이라도 되는 양 기피 대상으로 삼는 대통령 후보에게, “그럼 ‘폭풍정책’이라도 세우려느냐?”고 힐난하지 못하는 시인들에게서 ‘시정신’의 엄정함을 기대할 수 있을까?

 파블로 네루다는「천상의 시인」들에서 이렇게 질타한다. “너희들은 무엇을 하였느냐, 지드주의자들아,/ 지식인들아, 릴케주의자들아,/ 신비주의자들아, 실존주의의/ 가짜 마법사들아, 무덤에서/ 붉게 타오르는 초현실주의의/ 양귀비들아, 서구화된/ 유행의 시체들아,/ 자본주의 치즈의 창백한/ 구더기들아, 너희들은 무엇을 하였느냐?/ 고뇌의 시대 앞에서,/ 이 암울한 인간 존재 앞에서,/ 이 걷어차인 평정 앞에서,/ 똥물에 잠긴 이 머리/ 앞에서, 짓밟힌 이 가혹한/ 삶의 본질 앞에서.”(전2연 중 1연)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는 마당에 이미 이승의 목숨을 다하고 천상에 오른 시인일지라도 네루다의 질책과 분노는 거침이 없다.

 스탈린에게 38세의 젊은 나이로 죽임을 당한 20세기의 소련 시인 V.마야코프스키는 자신의 시가 얼마나 부끄러운 것인지 이렇게 고백한다. “신도 내 시집을 보고 통곡하겠지!/ 아무 말 못하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 뿐;/ 신은 겨드랑이에 내 시집을 끼고 하늘을 뛰어다니다가/ 숨이 차면 자기 친구들에게 시를 읽어 주겠지.”(시「그러나 어쨌든」전5연 중 5연) 그러면서도 그의 시정신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더욱 형형하게 빛을 발하고 있다.

 “왜 어째서 문학은 한쪽 구석으로 몰려야 하는가? 그것은 모든 신문에, 매일같이 모든 페이지마다 실려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디저트 정도로만 내놓는 문학 따위라면 죽어버려야 한다.”(A.S.차터스『마야코프스키: 사랑과 죽음의 시인』에서) 젊은 원혼 마야코프스키가 그렇게도 저주했던 ‘디저트 정도’의 문학의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다. 분단의 비극도, 혈육의 생이별도, 전쟁 참화의 위험도, 그리고 민족의 명운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아름답고 즐거운 디저트 문학’이 시의 대세를 이루고 있다.

 엄정한 시정신은 고사하고, 그래도 시단의 말석에 이름 석 자를 올린 까닭으로 필자도 시라는 이름으로 기도문을 써본다. 마침 미국의 눈도장을 받으러 떠나는 새 대통령의 성공을 비는 간절함이 시의 동기다.

 “촛불이 왕이 된 나라-/ 촛불이 말씀이다// 최신예 전투폭격기를 사오려던 일을/ 없던 일로 하겠습니다, 폭탄 없는 수송기로/ 굶주린 동포들에게 호남평야의 쌀포대를/ 투하하겠습니다, 시집장가 못가는 처녀총각에게/ 결혼자금을 난사하겠습니다, 만물이 말라죽는/ 동아프리카에 물대포를 정 조준하겠습니다,/ 그리고 총알이 난무하는 부자나라에/ 맨몸으로 다녀오겠습니다// 촛불임금 나라 밖 첫나들이-/ 말씀이 촛불이다”(졸시「연가 4 -착한 가짜뉴스」전문)

 분단의 비극이 또 다른 비극을 양산하는 분단의 저주-시적 상상력도 현실의 장벽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한다. 그럼에도 ‘분단[결핍]’이 상상력으로 변형되는 지점이 바로 한국 시인이 서야 할 자리라는 생각은 소중하다.

 이동희<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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