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법률문제
몇 가지 법률문제
  • 유길종
  • 승인 2017.07.12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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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안종범의 수첩

 안종범 전 경제수석의 수첩을 두고 말이 많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사건을 담당한 재판부가 안종범의 수첩을 간접증거로 채택했다고 전해지면서 그 해석이 분분하다.

 일반인의 상식으로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깨알같이 적어놓은 안종범의 수첩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여러 혐의를 입증할 요긴한 증거가 될 것으로 이해된다. 안종범의 수첩은 안종범이 피고인 박근혜의 지시사항, 즉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진술을 듣고 그 내용을 기재한 서류로서 형사소송법 제313조 단서가 정한 피고인의 진술을 기재한 서류에 속한다. 형사소송법 제313조는 피고인의 진술을 기재한 서류는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서의 그 작성자의 진술에 의하여 그 성립에 진정함이 증명되고 그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하에서 행하여진 때에 한하여 피고인의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서의 진술에 불구하고 증거로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안종범의 수첩은 작성자인 안종범이 자기가 그 수첩을 작성하였다고 인정하고 있고, 작성경위나 내용 및 형식에 비추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행해진 것으로 인정될 것이므로, 증거능력이 인정되는 데는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이다.

 한편 담당재판부가 안종범의 수첩을 간접증거로 채택한다고 한 것을 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나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 혐의 입증이 어려워진 것으로 추측하는 것은 오해이다. 일단 안종범의 수첩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의 뇌물사건에서 간접증거에 해당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교과서적으로 직접증거란 범인의 자백이나 범행현장을 직접 목격한 증인의 증언과 같이 요증사실을 직접 증명하는 데 이용되는 증거를 말한다. 간접증거 또는 정황증거란 범행현장에서 채취된 피고인의 지문과 같이 요증사실을 간접적으로 추인케 하는 사실(간접사실)을 증명하는 데 이용되는 증거를 말한다. 형사재판에 있어 심증형성은 반드시 직접증거에 의하여 형성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고 간접증거에 의할 수도 있다. 뇌물사건에서 직접증거는 뇌물을 받은 사람이나 준 사람의 자백이나 뇌물을 주고받으면서 나누는 대화를 들은 제3자의 진술 정도를 들 수 있고, 그 외는 모두 간접증거이다. 당연히 뇌물사건에서는 피고인들이 자백하지 않는 한 직접증거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직접증거 없이도 간접증거들만으로 유죄로 인정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 법원이 안종범의 수첩을 간접증거로 채택한다고 한 것은 형사소송의 증거법칙상 당연한 것이고, 혐의 입증이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추측은 잘못된 것이다. 박 전 대통령과 이 부회장의 뇌물혐의는 여러 간접증거들에 의하여 박 전 대통령이 직무와 관련하여 대가성 있는 금품을 받았다고 인정될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렸다.

 #2 미필적 고의

 국민의당 이준서 전 최고위원이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준서 전 최고의원이 이유미와 공모하여 제보를 조작한 것으로 인정되지는 않지만, 최소한 그 제보가 허위인 것으로 의심하고서도, 즉 허위사실공표에 대한 미필적 고의를 가지고 그 제보를 그대로 공표하였다는 혐의이다.

 국민의당은 검찰이 이 전 최고위원의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여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을 두고 ‘추미애 가이드라인’을 따른 것이라고 비난하지만 맞지 않는 말이다. 미필적 고의가 있는 경우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가 인정되는 것은 당연하다. 대법원은 피고인이 적시한 내용이 진실한지를 확인하는 일이 시간적ㆍ물리적으로 가능하였음에도 그러한 확인의 노력을 하지 않은 채 적극적으로 이를 공표하였다면 미필적 고의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해 왔다. 검찰은 추미애 가이드라인을 따른 것이 아니라 교과서와 대법원판례를 따른 것이다.

 이준서 전 국민의당 최고의원에 대하여 미필적 고의에 의한 허위사실공표죄가 인정될지 여부는 재판과정에서 밝혀지겠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아니면 말고’ 식의 폭로가 대단히 위험한 행동인 것으로 분명히 인식되었으면 좋겠다.

 유길종<법무법인 대언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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