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수업, 가치관 형성의 계기
질문수업, 가치관 형성의 계기
  • 국방호
  • 승인 2017.07.11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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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이 비열하죠! 솔직하게 직선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반장과 짜고 기표를 수치로 몰아넣었잖아요.” 월요일 아침 기숙사생들과 식사하다 문득 지난 주 공개수업의 장면이 떠올라 던진 질문에 대한 답이다. “교사의 모사 때문에 동경(憧憬)에서 동정(同精)으로 변했어요!” 옆 학생이 거들었다. 또띠아(터어키 음식)의 노란 소스가 입가에 흘러내리는 것도 모르고 열변이다.

  오늘도 국어과를 비롯하여 여러 교과 동료들이 참관한 가운데 공개수업이 시작되었다. 칠판에는 ‘우상의 눈물, 전상국’이라고 큼지막하게 쓰여 있다. 한 학생이 나와 작품 줄거리를 설명했다. “물리적 폭력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던 주인공이 교사와 반장의 술수에 의해 가난이라는 약점이 노출되면서 무력화되는 내용입니다.” 다소 떨리는 목소리에 급우들은 박수를 보냈다.

  “이제 조별학습입니다.” 교사의 말과 동시에 학생들은 네 명이 한 조가 되도록 앞줄 두 사람이 책상을 돌렸다. “지금부터 이 작품에 대한 질문을 만듭니다. 대신 수준을 상·중·하로 두 문제씩 만들고 포스트 이트에 써서 제출하세요! 10분 주겠어요.” 모둠을 돌며 노트필기를 살피고 표현에도 귀를 기우렸다. 그리 소란스럽지는 않았지만 시간은 금방 지났다. 제출한 질문을 수준별로 물어 대합한 학생에게 점수를 주고 잘 된 질문 5개를 칠판에 썼다.

  “학생들이 기표를 나쁘게 말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담임이 반을 위해 협조가 필요하다고 했을 때 주인공이 치욕스러웠던 이유는?” “기표는 맨 끝에서 왜 무섭다고 했을까?” “담임은 형우를 통해 기표를 지배하고 싶었을까, 아니면 변화시키고 싶었을까?” “작가가 작품을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교사는 노란분필로 칠판에 썼지만 학생들은 질문은 파랑색으로 의견은 검정색으로 썼다. “다 된 모둠은 제출하고 다음 시간에 발표합니다.” “반쯤 보다가 나오려 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끝까지 있었네!“

  독서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1학년에게 주 한 시간씩 진행하는 특성화 사업 필독서 ‘데미안’이 화제가 되었다. 문학은 가치관이 형성되는 시기에 작품 속의 인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심경의 변화를 유도하는 계몽주의 성격을 띤다. ‘크로머’라는 악당의 비열한 속임수에 빠져들어 가상적인 범죄로 죄책감에 빠졌다가 데미안을 만나면서 차츰 성숙돼가는 내용인데 학생들에게 잘 알려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도 대화에 올랐다.

  “그래요, 여기서는 기표는 엄석대이고, 형우는 한병태예요!” 옆에서 잠시 듣고만 있던 학생이 마치 생각을 정리해서 말할 기회를 기다렸다는 듯 치고 들었다. 식사 후 다른 학생들의 의견이 궁금해 교실로 가 학생들의 과제물을 빌렸다. “물리적 힘으로 자신의 약점을 감추려는 인간보다 주도면밀한 술책으로 남을 기만하는 것이 더 나쁘다고 생각해요.” “담임이 갱생불가능한 기표를 변화시키고 싶은 의도도 있었어요.” “결국 우상은 기표이고 눈물은 도피입니다.”

  빌려온 노트를 앞뒤로 넘겼다. ‘자기 기준으로 우리사회의 인간형 나누기“란 제목의 분석에도 시선이 멈추었다. 1. 환경의 변화에 따른 나태한 삶을 사는 사람 2. 환경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인간형 3. 환경이 변해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는 우유부단한 인간형 ” 저는 3번의 인간형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도 2번의 인간형처럼 환경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그래 자신의 정체성확립을 위해 엄청 노력하고 있구나!

  “선생님 지난번 독서동아리에서 토론한 ‘질문이 살아있는 수업’을 적용하신 거예요?” “ 교장선생님, 그전부터 해오던 수업방식이에요.” 진즉 이런 수업을 참관하지 못한 점에 미안하고 아울러 좋은 수업에 감사했다. “질문을 만들고, 함께 토론하니 수업이 저렇게 뜨는구나. 그리고 학생들은 수업을 통해 얼마나 성숙했을까?”

  국방호<전주영생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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