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시에는 비어 있고 훼손된 허무의 바닥을 차고 일어나 산을 넘고 또 넘어 가로막는 산과 그것을 넘고자 하는 열망, 이 두 축의 길항 속에서 김완철 시의 치열성과 미래지향적 삶이 가로놓여 있다.
갈꽃은
바람에 모두 지고
꽃으로 남고 싶은 것은
눈꽃이 된다.
-생략-
발 동동 구르면서
나무처럼 마주보고
눈을 맞는다.
추위 속에서도
시종 꽃으로
남고 싶은 우리의 사랑
- 「눈꽃」에서-
그는 지금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그것도 추위 속에서 눈을 맞으며 그 옆에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가 길가에서 혼자 눈을 맞고- 부인이 지금 만성신부전증 때문에 혈액 투석으로 장기간 사투를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두고 혼자 집안으로 뛰어들어 올 수가 없기에 결연한 심정으로 단호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추위 속에서도 마지막 힘을 다하여 내리는 ‘눈(설)’을 ‘꽃(화)’으로 승화시켜 생을 이어가는 마무리 작업이 그것이다.
향을 틀어올린 춘란이다.
겨울 마이산
돌탑을 돌아온 찬바람 맞아
맵고
단단하다.
시장 한구석
좌판에서
마지막 떨이를 끝내고
허리 펴는 누이 얼굴처럼
모 없이 둥글다.
어머니 이마
주름살 같은 밭고랑에
마늘 향
가득하다.
-<진안 마늘> 전문
논리나 개념보다 직관이 앞서 있다. ‘마늘’을 보고 대뜸 ‘향(香)을 틀어 올린 춘란’이라고 직관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모 없이 둥근’ 마늘을 보며 힘들게 살고 있는 누이를 떠올리기도 하고 ‘어머니 이마/ 주름살 같은 밭고랑에/ 마늘 향’에서 일생을 고단하게 살아오신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리기도 한다.
‘나무에 흔들리는 바람처럼// 가지 하나 인연 붙잡고/ 떨어질 듯/ 매달린’(<저 감>)에서 존재의 불안이 감지된다. 그러던 그가 2년 전 아내와 사별을 하고
사실 나는 아무 것도 없는 사람
나의 시는 자연이 준 것이고
이름은 부모님이 달아 준 명찰
내 자식은 아내가 준 선물이며
내 몸뚱이도 부모가 준 것이니
나는 아무 것도 없는 사내
허허 아무 것 없이도 잘 살아왔구나
-<허허>에서
혼자 남은 그가 ‘나는 아무 것도 없는 사내 / 허허 아무 것 없이도 잘 살아왔구나.’ 라고 스스로 위로하면서 고달프고 아름다웠던 추억을 ‘등에 지면 짐이 되지만/ 가슴에 안으면 사랑이 된다’(<무거운 짐>)며 자녀들의 보살핌 속에 남은 생을 시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김동수: 시인. 백제예술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