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재 화백 70년만에 고향 순창에 안착
박남재 화백 70년만에 고향 순창에 안착
  • 순창=우기홍 기자
  • 승인 2017.06.26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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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서양화단의 원로 작가로 추앙받는 박남재 화백이 70여년 만에 고향인 순창으로 귀향했다. 사진은 황숙주 군수와 환담하는 박 화백(사진 우측). 순창군 제공
 ‘한국의 세잔느’로 불리는 박남재(89) 화백이 70여년 만에 고향인 순창으로 최근 귀향해 화제다.

 특히 호국보훈의 달인 6월에 국내 서양화단의 원로로 추앙받는 박 화백이 빨치산 출신으로 험난한 인생역정을 극복해 온 사실이 밝혀지면서 눈길을 끌고 있다.

 박 화백은 파란만장한 인생 스토리의 주인공이다. 지난 1929년 순창읍에서 태어나 당시 6년제이던 중학교 4학년 때 서울로 전학했다. 서울대 미대에 들어갔지만, 입학 몇 달 만에 6.25가 터지면서 학업은 중도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대략 15일을 걸어서 고향인 순창으로 돌아오고서 회문산 빨치산 전북도당에 들어가 지리산과 운장산 등을 일 년 동안 누볐다.

 “총격전 중에 총알도 맞았지만 어깻죽지 아래를 관통해 팔이 떨어지지 않은 것도 그렇고, 국군에게 붙잡혀 끌려간 광주포로수용소에서 서양화가 오지호 화백을 만나 스승으로 모신 인연도 그렇고 그림이 운영이었던 것 같다”며 지난날을 회상했다.

 이후 박 화백은 조선대학교 미대를 나오고 나서 고교 교사를 거쳐 원광대 미대 학장까지 지냈다. 전주여고에서는 이낙연 총리의 부인 김숙희 여사를 지도하기도 했다.

 김 여사는 대학진학을 앞두고 이화여대 미대를 희망했지만, 담임교사는 “합격이 어려울 것”이라고 했지만, 박 화백은 “내가 나서 ‘숙희의 실력이면 붙을 것’이라며 시험을 볼 것을 권유했고 결국 이화여대에 합격한 애피소드도 있다”고 밝혔다.

 이후 박 화백과 김 여사는 사제관계는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특히 지난 3월에는 순창으로 박 화백을 찾아오기도 했다. 당시 김 여사는 “90세 가까운 연세에도 붓을 놓지 않고 작품을 하시는 스승님의 치열한 예술혼과 열정이 존경스럽다”라며 “‘예술가는 돈에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말씀을 늘 가슴에 새긴다”고 주변에 말했다.

 한편, 박 화백은 지난해 12월부터 순창군 적성면 구암마을 ‘섬진강 미술관’에 둥지를 틀었다. “순창이 문화예술의 고장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고향에 돌아와 큰 나무가 돼 달라”는 황숙주 순창군수의 요청을 받아들여 16살 이후 계속해 온 타향살이를 접은 것.

 90여세의 나이임에도 매일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까지 종일 붓을 들어 화폭과 씨름 중이다. 최근 새 작품을 위해 200∼300호 대작 캔버스를 10개나 사들일 정도로 의욕을 불태우고 있다.

 “푸근한 고향 품에 안긴 덕분에 열정이 샘물처럼 솟구쳐요”라고 밝힌 박 화백은 “세상 사람들의 심장을 쿵하게 울릴 걸작을 꼭 하나 남기고 싶다”는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박 화백은 대담한 원색의 붓질로 자연의 강렬한 리얼리티를 포착해 독창적인 색감과 표현력으로 구상화의 새 길을 개척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예술가로는 최고의 영예라 불리는 ’대한민국 예술원상‘ 을 2013년에 받았다. 대한민국 미술대전 운영위원과 심사위원장도 역임한 바 있다.

 순창=우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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