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전용사 은삼기 옹 ‘잊을 수 없는 6·25’
참전용사 은삼기 옹 ‘잊을 수 없는 6·25’
  • 이정민 기자
  • 승인 2017.06.22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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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 참전용사 은삼기 옹이 본사와의 인터뷰 중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김얼 기자
 “6·25 한국전쟁은 앞으로 그 누구도 겪어선 안 되는 비극이라네.”

 6·25전쟁 참전용사 은삼기(88) 옹은 곧 아흔의 나이를 바라보고 있지만, 아직도 눈을 감으면 당시의 참상이 생생하다.

 6·25전쟁 발발 67주년을 앞둔 22일, 은삼기 옹은 그때의 뼈아픈 기억과 마주했다.

 은 옹은 1950년 당시 21세로 광주에서 중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이었다. 하지만, 민족의 비극인 6·25전쟁이 발생하면서 은 옹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9남매 중 셋째인 은 옹은 생계를 책임지는 형님들 대신, 1950년 7월 14일에 군에 입대했다.

 당시 은 옹은 7사단 8연대 2대대 소속 보병으로 최전방 일선에서 북한군과 맞서 싸웠다.

 은삼기 옹은 “7월 당시 인민군에 밀려 대구에서 하루에 주먹밥 하나씩 먹으며 맞서 싸웠지. 당시 이등병인 나는 겁 없이 전장에 뛰어들며 하루빨리 전쟁이 끝났으면 하는 생각뿐이었어. 가족이 기다리니까…”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총성이 가득한 전쟁의 악몽은 아직까지 그를 괴롭히는 모습이다.

 은 옹은 “대구에서 북진하는 도중에 산속에 숨어 있던 인민군의 기습으로 전우들을 잃었어”라며 “죽은 전우들을 야전삽으로 땅을 파서 묻어 줬는데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라며 노병은 잠시 옛 전우들의 생각에 잠기는 듯 정적을 유지했다.

 은 옹은 “상승세를 이끌고 북진하던 우리는 1950년 10월 18일 최선두로 평양에 입성해 김일성 대학교에 태극기를 게양했어. 그런데 말이야…” 잠시 말을 잇지 못한 은 옹은 “다음날 바로 중공군이 개입해 금방 적군이 7사단을 둘러쳤지. ‘나는 여기까지구나’라는 생각이 들 찰나에 가족들 생각에 온 힘을 다해 싸웠던 것 같아”라며 아찔했던 순간을 털어놨다.

 지옥 같았던 전쟁이 끝나고 은 옹은 곧바로 고향인 순창으로 향했다. 전쟁통에 볼 수 없었던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를 반긴 건 맹인인 아버지 혼자였다.

 은 옹은 “어머니와 8명의 형, 동생들이 북한군에 처참한 죽임을 당했다는 아버지의 말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 하늘을 원망했어”라며 “내가 전쟁에서 받은 가장 큰 상처는 사랑하는 가족들을 떠나보낸 거야. 전쟁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비극이지…”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마지막으로 은삼기 옹은 “내 손자들도 6·25전쟁 이야기를 듣기 싫어하는데, 다른 젊은이들도 마찬가지겠지”라며 “하지만, 전쟁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몰라. 절대 일어나선 안 되고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산화한 전우들을 잊어선 안 된다네”라고 거듭 강조했다.

 한편, 은삼기 옹은 1954년 하사로 전역해 참전 유공으로 ‘화랑훈장’을 받았다.

 
이정민·임덕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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