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없는, 그 멋진 나라
시험 없는, 그 멋진 나라
  • 이해숙
  • 승인 2017.06.21 14:5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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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생엔 공부 잘할게요.”

 얼마 전 세상을 스스로 등진, 23살 청년의 자신의 어머니에 남긴 한 마디가 온 국민의 귓가에 울렸다. 무엇이 이 청년을 죽음에 이르게 했을까? 

 개학하면 개학고사, 한 주가 가면 주말고사, 한 달이 가면 월말고사, 학기의 절반이 지나면 중간고사, 학기가 끝나면 기말고사, 일 년에 두세 번씩 학업성취도평가, 한 달에 한두 번 모의고사.

 시험공화국에 살고 있는 우리의 아이들은 초등학교에서부터 취업을 하기 까지, 아니 취업을 해서 원하는 자리에 오를 때까지 수없이 많은 시험을 치루고 그 서열화 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위치를 규정받게 되는 것이다. 

 지난 14일, ‘과도한 경쟁 교육을 완화 하겠다’는 취지로 국정기획자문위원회와 교육부는 9년간 유지해오던 국가수준학업성취도평가(일제고사)를 폐지하고, 일부 학생만 대상으로 하는 표집(샘플) 방식으로 바꾼다는 발표를 했다.

 문재인 정부의 교육정책의 변화와 방향이 읽히는 대목이며, 반가움이 앞선다. 

 시험이 우리 역사에 등장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1,000여 년 전인 고려 광종 7년, 당시 문벌귀족들의 횡포를 막고 국가 개혁을 위한 인사등용 시스템으로 활용하기 위해 도입된 과거제도가 그 시작이었다.

 능력에 따른 인재 발굴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이 제도는 새로운 세력을 역사의 전면에 등장시키면서 사회적 변화를 몰고 온 진보적인 정책으로 시작 된 것이다.  

 천 년의 세월동안 권력 유지를 위한 ‘통치 방식’으로 자리 잡아 오면서, 우리에게 시험이라는 방식은 ‘서열과 지위를 보장하는 정치 · 사회적 약속’으로 받아들여졌고, ‘좌절 또는 희망’의 근거로 작용해왔다.  

 그러나 시험의 기저에는 ‘능력이라는 이름을 빌린 서열화’가 숨어있다.

 일제고사를 통해 아이들을 성적순으로 늘어세우고, 수능원서를 내는 60만명의 아이들이, 200여개의 전국 4년제 대학도 ‘서울대와 연·고대’ ‘인서울’ ‘지잡대’로 줄을 세워 아이들이 가진 각각의 가치를 사장시키고, 각자의 능력과 가치를 성적이라는 말로 대신한다. 저마다의 색과 저마다의 향기와 저마다의 크기와 저마다의 모양으로 살아하는 한 사회에서 하나의 기준으로 개개인의 능력을 평가하는 것처럼이나 바보스러운 일이다.  

 반발할 수 없는 힘을 바탕으로 한 권력의 강력한 통치방식인 시험이, 인간 개개인의 자유에 미치는 영향은 참으로 폭력적이다.

 각고의 노력으로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은, 보상으로 받은 자신들의 서열에 지나친 집착을 갖게 되며, 자신들의 지위와 부가 무너지질 원하지 않는 것처럼, 그 서열을 만들어내는 구조가 무너지지 않도록 노력한다.

 그들에게 주어진 힘과 재화를 그들만의 카르텔을 형성하는데 사용하고, 그 구조가 안정화되도록 노력한다.  

 그러한 서열화 시키는 구조가 일반화되어가면서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꿈과 아이들의 능력과는 무관하게 ‘서열화의 기준’에 맞도록 자신들의 아이들을 조련하며, 그 비용을 대기위해 그들의 꿈을 뒷전에 밀쳐두고, 사교육은 부모들의 불안을 부추기면서 활황을 띤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란아이들과 그런 모습을 지켜봤던 젊은이들은 결혼도 아이도 포기하기에 이른다. 모두가 불행한 나라의 모습이다.  

 아이들이 행복해야, 국가의 미래가 행복하다는 명제가 ‘참’이라면, 시험이 사라져야 국가의 미래가 행복해진다는 명제도 ‘참’이 된다.  

 함께 배우는 친구들이 경쟁상대가 아니라, 평등한 지위로 협력자가 되는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대학과 취업을 위한 스펙 쌓는 배움이 아니라 자신의 가치를 드러내는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경쟁과 시험이 인간의 모든 가치를 평가하는 사회, 경쟁에서 이긴 소수에게 돈과 권력이 집중되는 시스템을 재편해야 한다. 이것이 문재인정부가 추구하는 교육개혁의 근원적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시험 없는 나라,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파묻힌 나라에서 살고 싶다. 

 

 이해숙 의원(전라북도의회 교육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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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kk 2017-09-06 09:26:00
시험을 없앨 수 없으면서 시험 탓을 하는건 무책임한, 옳지않은 것이지 아닐런지요.
현실에서 오히려 시험에 받아들여야 하고, 극복해야할 과정으로 인식하여 받아들이도록 가르쳐 주는 것이 좋을듯하고, 이러한 문제가 발생할 때 마다 원인을 시험이라 하는 것은 이런 유사한 문제의 해결책이 안되며, 오히려 자살을 합리화 시켜주는 역할 밖에 안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