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다운 삶’의 뜻
‘사람다운 삶’의 뜻
  • 이동희
  • 승인 2017.06.19 18: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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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으로 알 수 없는 게 사람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네, 10대 불가사의네 하지만 최고의 불가사의는 바로 인간일 것이다. 인간을 빼놓고 불가사의한 존재를 찾는다는 것은 바늘 없이 바느질하려는 격이요, 굴대[軸]없이 수레를 끌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람이 얼마나 불가사의한지, 최근의 몇 가지 사례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지난 6월 8일, 경남 양산에서 아파트 외벽 도색작업을 하던 작업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고소공포증을 잊기 위해 틀어놓은 음악 소리가 시끄럽다며 주민 서 아무개 씨(41세)가 홧김에 밧줄을 끊어 작업자 김 아무개 씨(46세)가 추락하였다. 이로 인해 다섯 아이의 아빠인 그는 안타깝게도 목숨을 잃고 말았다. 이분에게는 칠순 노모와 아내,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부터 27개월 된 아이까지 다섯 아이가 있다. 하루아침에 가장을 잃은 이 가족은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에 앞으로의 생계가 막막하게 되었다. 홧김에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다니, 도무지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제자가 사제 폭탄을 설치해 스승 김 아무개 교수가 목과 팔 등에 화상을 입었다. 경찰은 연세대학교 대학원생 김 아무개 씨를 체포하고, ‘살인 미수’ 혐의를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김 교수를 노린 것은 맞지만, 죽일 의도는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고 한다. 제자가 지도 교수를 위해 하려고 나사못이 든 사제 폭발물을 만들고 설치하다니, 최고 지성의 전당이라고 하는 대학원생의 행위로는 도무지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권이 바뀌니 미쳐 돌아가던 세상이 조금은 바뀌는 듯도 하다. 실은 세상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제정신을 차린 형국이긴 하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공권력이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살상무기나 다름없는 물대포로 멀쩡한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고도 사과는커녕 유가족과 시민단체를 조롱하듯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더니 드디어 두루뭉술하게 사과 비슷한 성명을 냈다. 정권이 바뀌기는 바뀐 모양이다.

 그와 관련하여 이 나라 최대 대학이요,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던 서울대학병원의 의사가 물대포에 의한 의식 불명과 그로 인한 사망을 ‘외인사’가 아니라 ‘병사’라고 고집하더니, 이제야 ‘외인사’를 제시한다. 정권이 바뀜에 따라 죽었던 사람의 사망원인도 바뀌는지, 이래저래 대학의 권위는 물론 의사에 대한 신뢰도 땅에 떨어지게 되었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의사의 권위가 추락한 것은 우리나라만의 일이 아닌 모양이다. 영국의 가정의인 해럴드 시프먼은 23년 동안 250명이 넘는, ‘나이가 많지만, 건강상태가 양호한 여성들’을 골라 ‘치사량의 헤로인을 주사’하는 방법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죽였다.(시사인. 508호) 언론은 그를 ‘죽음의 의사-Dr.Death’라는 별명을 붙였지만, 이로 인해 의사와 환자 사이에 암묵적으로 유지되던 ‘선한 동기’라는 신뢰 관계가 깨지는데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환자를 살리는 것을 보람으로 여기는 의사가 아무 이해관계가 없는 건강한 사람을 고의적으로 죽이다니, 불가사의한 일은 해외라고 예외가 아닌 모양이다.

 ‘세상이 미쳤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확히 말해서 ‘세상’은 단 한 번도 미쳐 돌아간 적이 없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함부로 해치려는 ‘사람’들이 미쳤을 뿐이다. 이런 진실을 외면하고 불가사의한 일들을 그저 어처구니없다며 한탄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싶은 사회는 정치력이나 몇 사람의 주장으로 이룰 수 없다.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자유와 평등’이 정치논리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내가 먼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로 공유하고, 실천할 수 있을 때만이 사람다운 삶이 가능하다.

 소련 시인 요셉 브로드스키는 미쳐 돌아가는 세상을 이렇게 읊었다. “2년 후/ 양복은 누더기가 되고,/ 진실은 가루가 되며,/ 유행은 바뀌어 있겠지./ 2년 후/ 아이들은 애늙은이가 되어 있을 거야./ 2년 후/ 2년 후”(요셉 브로드스키「서정시」전체3연 중 2연) 그래도 시인은 이 시 3연에서 ‘우리 결혼하자’라고 말한다. 진실이 가루가 되어도, 자유롭고 평등한 관계로 이루어지는 사랑만이 ‘사람다운 삶’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시인은 직관과 느낌[서정-시]으로 그것을 꿰뚫어 볼 뿐이다.

 이동희<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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