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상기와 함께한 화가들
손상기와 함께한 화가들
  • 이문수
  • 승인 2017.06.18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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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선생님”
 “어, 문수구나”
 “하하, 건강하시죠. 손상기 선생님 기억하시죠?”
 “그럼, 상기 형은 항상 말하기를, 여수에서 서울 가다가 익산에 내려서 원대에 들어왔다고 했지”

 까까머리 중학교 시절에 교생 선생님으로 필자를 지도해 준 김윤진 선생님과 통화 했다. 40여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서로 안부를 묻거나 만나면 시간과 공간의 거리는 일순간에 사라지고 훈훈함이 감돈다. 전북미술판은 자연스럽게 맺어진 인연들이 얽히고설켜서 놀고(?) 있는 터전이다. 그래서 눈을 감아도 보인다. 그리고 그 속에는 미술가들의 슬픔과 기쁨, 열정이 서려 있다.

 손상기(1949~1988)는 세 살부터 다섯 살까지 앓은 구루병이 척주만곡으로 이어져 평생을 불구로 살았다. 그래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깊숙한 곳에 드리운 그림자를 치열하게 응시했다. 마음 깊이 자리 잡고 있는 정신적 고뇌와 매일 반복되는 현실적인 벽 앞에서 좌절하고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의 짧은 생은 격한 열정으로 치열하게 화혼을 불사른 숨 가쁜 여정이었다.

 그에게는 39세에 요절한 화가, 시적 감각, 문학적 감수성, 곱사등이, 낭만, 실험, 고통, 가난 등의 수식어들이 붙어 있다. 이런 시선은 화가의 작품세계로 안내하는 동기를 자극하기도 하지만, 편견과 왜곡의 양면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태어났다는 게 억울해서 죽을 수 없다. 세상은 몹시 험하지만 한 번은 살아볼 만한 게 세상이다”라는 손상기의 말처럼, 그의 삶은 세간에서 회자한 것처럼 그리 절망적이지 않았다.

 손상기는 자신의 삶을 지독하게 사랑했고, 그 삶을 격하게 표현한 리얼리스트였다. 그가 남긴 400여 점의 작품과 문학적 감성이 짙게 배어 있는 글들을 통해서 그의 삶과 예술은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이 되었다.

 1972~78년, 손상기 작품세계의 기반을 닦았던 곳이 전북의 익산과 전주다. 그의 말처럼 ‘기초공사’를 한 곳이다. 그는 자의식이 강했고, 항상 자신을 표현하고 드러내려는 의도가 충만했다. 지나치게 예민한 감성과 그늘진 외로움을 들키지 않으려고 항상 적극적인 자세로 최대한 창작에 몰입했다. 이 시기의 작업은 과수원, 시골풍경 등 전원적이고 서정성이 흥건히 녹아 있다. 힘겨운 삶의 무게에 짓눌린 피곤한 육신이 등장하지만, 그것을 따뜻하게 감싸는 온기로 삶을 예찬하고 있다.

 손상기의 ‘기초공사’를 면밀히 살펴야 그의 작품세계를 대표하는 <자라지 않는 나무>와 <공작 도시> 연작의 기반을 이해하면서 그가 추구한 문학적 사유와 감성을 결합한 작품세계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특히 <자라지 않는 나무>는 신체적으로 성장할 수 없는 손상기의 자화상으로 내면적인 절규를 담아내고 있다. 길모퉁이 가로수가 잘려나가는 상황을 마치 자신의 신체가 잘려나가는 고통으로 느끼면서 내면의 아픔을 표출한 것이다.

 1975~78년, 손상기는 대학에 다니려는 방편으로 이강원 선생님과 함께 전주에서 ‘공간화실’을 운영했다. 그곳에서 동고동락했던 이강원, 신철, 김윤진, 오우석, 박상규, 손석 등의 화가들이 지금은 굵직한 미술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전북도립미술관 학예연구팀은 손상기의 그늘진 청춘 시절을 함께한 화가들의 추억과 증언을 토대로 그 시절 전북미술판의 진솔하고 담백한 이야기를 기록해 갈 것이다.

 오는 주말에는 1970년대의 전북미술판 얘기를 들어보기 위해 경기도 양평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철 선생님을 찾아간다. 시간이 흐르고서, 이런 기록들은 소중한 역사가 될 것이다. 전북미술 역사는 누가 ‘첫 번째’로 시도했다는 폭력적인 관점보다는 소박하고 담백한 미술 이야기를 담아내야 한다. 확실한 것은,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땅에서 우리만의 미술역사를 지금도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짙은 그림자 속에서 희망을 응시했던 손상기는 말했다. “한 시대를 사는 인간으로서 충실한 작가가 자기 자신의 마음에 찰 작품을 진지하고 정직하게 제작한다면, 그것이 어떻게 역사와 분리되고 미와 구분되겠는가?”라고.

 이문수<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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