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행검덕(精行儉德)
정행검덕(精行儉德)
  • 이창숙
  • 승인 2017.06.16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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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8>
 세간에 화제가 된 검증이라는 단어 앞에 우리는 얼마나 떳떳한가. 과연 우리에게 청렴한 관료, 학자의 상이 있었던가. 얼마 전까지 부정(不正)도 능력(能力)이 되어 한쪽 눈을 감고 넘어갔던 시절…. 이제 조금은 기대를 해보게 된다.

 차를 마시는 생활이 정행검덕(精行儉德)의 삶에 비유되는 말이 있다. 근원은 당나라(唐, 618~907)때 육우(陸羽, 733~804)가 저술한 『다경(茶經)』의 내용 중에 몇 줄 안 되는 내용이지만 차의 정신을 말하는 대표적인 문구이다. 『다경』은 차에 대한 경전으로, 내용면에서도 유교와 불교와 선을 아우르고 있다. 차와 관련된 차나무의 생육에서부터 도구, 차를 마시는 이의 마음가짐 등 차에 대한 최초의 전문서적이다. 육우가 10년이 넘게 걸려 완성한 대작이다. 그 후 현재까지도 다사(茶事)의 지침서가 되고 있다. 한국 다서(茶書)의 내용들 역시 『다경』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지금까지 ‘다신(茶神), 다성(茶聖)’으로 불려 칭송되고 있다. 당시 차는 약용과 식용의 의미가 강하였다. 하지만 육우는 그것을 넘어 차를 통해 인간의 이상세계를 표현하고자 하였다. 그것이 바로 정행검덕이다.

 그는 차는 그 성질이 매우 차갑다(茶之爲用 味至寒). 마시기에 알맞은 사람은 정행검덕한 사람이다(爲飮 最宜精行儉德之人)라고 표현했다. 즉 정성스러운 행실과 검소한 덕망을 갖춘 사람에게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정(精)이란 모든 생활의 근원이 되는 정신을 뜻한다. 차를 마시는 사람의 평상시의 마음가짐을 뜻한다. 평안하고 고요한 상태의 평정심(平靜心)을 뜻한다. 행(行)은 마음만이 아닌 몸소 실천하는 행위이다. 검(儉)은 절제함이고 덕(德)은 조화롭고 후덕함과 곧은 것이다. 즉 방자한 처신이나 사치를 하지 않는 다는 뜻이다. 이 모두 옛 성현들의 가르침으로 실천하기 어려운 덕목이다.

  육우가 절강성 호주에서 『다경』을 저작할 당시 그 곁에는 많은 문인(文人)들과 아사(雅士)들이 차를 마시며 시를 읊었다. 당시에는 차를 마심으로서 덕을 기르고 뜻을 고아하게 가진다는 풍조가 유행하기도 했다. 육우의 교우인 시승(詩僧) 교연(皎然, 720~793)은 그의 다시(茶詩)에서 첫 잔은 혼매함을 씻어 상쾌한 마음과 생각이 천지에 가득하고, 둘째 잔은 홀연히 비가 내려 마음속 티끌을 씻어내고, 셋째 잔은 문득 도를 깨쳐 괴로움과 번뇌를 씻어준다고 읊었다.

 노동(盧仝, 795~835)의 유명한 칠완다가(七碗茶歌)는 지금까지도 차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다.

 

 「일곱 잔의 차 노래」

 첫 잔은 입술과 목을 적시고,

 둘째 잔은 번뇌를 씻어주며,

 셋째 잔은 허전한 마음을 적셔 오천권의 문장 떠오르게 하고,

 넷째 잔을 마시니 가벼운 땀이 흘러 평소 불편한일들이 땀구멍으로 사라지네,

 다섯째 잔은 뼈와 살을 맑게 하고,

 여섯째 잔은 신선과 통하고,

 일곱째 잔은 마시기도 전에 겨드랑이에 가벼운 바람 이는 것을 느끼네.

 선승 교연과 문인 노동의 대표적인 다시(茶詩)이다. 이들의 차를 마시는 즐거움은 육우의 ‘정행검덕’의 정신을 시(詩)로서 구체적으로 드러내며 몸으로 실현한 것이다. 단지 차를 마시는 행위만이 어찌 검소해지는 것이겠는가. 세상살이의 고민과 번뇌를 차를 마시며 달래고 속세의 마음을 씻고자 함이 더 클 것이다.

 

 / 글 = 이창숙 문화살림연구원 원장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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