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에 대하여
우정에 대하여
  • 최정호
  • 승인 2017.06.15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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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를 얻는 유일한 방법은 스스로 완전한 친구가 되는 것이다? 에머슨-

 오래전에 가까운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우정을 논하다가 “ 나는 친구를 가질 수 없다. 나는 너희들 누구에게도 손가락 하나 잘라 줄 용의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 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당시의 나에게 ‘우정’이란 어떤 개념이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우애를 다짐하던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찬물을 뿌렸던 나의 황당한 발언이었다.

 위키백과를 찾아보면 우정은 친구 사이에 나누는 정신적 유대감을 뜻한다. 문경지교(刎頸之交)의 고사처럼 목이 달아나도 변치 않는 우정이나 막역지교(幕逆)의 고사처럼 생사와 존망을 같이하겠다는 자세가 진정한 우정이라 간주하던 질풍노도의 시절에 대한 기억이다. 우정이 무엇인가 묻는다면 모든 사람은 나름의 개념을 내놓을 수 있다. 그 답은 물론 각 개인의 지닌 경험과 학습의 총합으로 산출될 것이다. 오래된 문서를 정리하다가 대학교 1학년때 친구에게서 온 엽서를 발견했다. “정호야 돌아오는 토요일 대학교 정문 앞 석탑 다방에서 오후 3시에 만나자”고 쓰여있다. 그때는 만남을 위해 편지를 쓰고 그 시간을 기다리고 먼 길을 마다하지 않았다.

 나의 인생에서 첫 번째 외박은 친구 집 방문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기억에 남아있다. 닭을 잡아 주지 않았다고(당시에는 먹거리가 귀해서 손님이 오면 환대하고자 닭을 잡아 대접했었다!ㅎㅎ)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그 섭섭함을 친구에게 따지며 농을 걸자 그 친구는 “야! 그날 밤에 내가 엄마한테 조르고 졸라서 아침에 닭을 잡았는데 왜 기억을 못하냐?”며 볼멘소리를 한다. 40년도 더 된 그 친구와의 관계에서 왜 이 섭섭한 기억이 유별나게 남아 있을까? 호의와 환대를 기대하는 것이 인간관계의 중요한 속성이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아낌없이 주고 상대방을 이용하지 말라는 가르침은 주는 것보다 받는 걸 밝히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반복적인 경고이다.

 우리의 기억은 자기기만과 자아도취에 빠져 악마적으로 편집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오래된 우정을 갈라놓기도 한다. 한 명의 좋은 친구를 얻는 데는 오래 걸리지만 잃는 데는 한순간이 될 수도 있다. 어린 시절 또는 가난한 시기의 우정은 복잡한 이해상충의 상황에 노출될 가능성이 낮아 관계가 오래가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은 오랜 친구를 그리워하기도 하고 또 옛날이야기를 하면서 위안과 행복을 느낀다.

 이러한 우정의 습관은 지연이나 학연 동맹을 발생시켜 사회적 병폐 현상으로 나타나기까지 한다. 고대 시대의 우정은 단순 명료하다. 적이거나 아군이거나! 도원결의를 통하여 생사를 함께할 것을 맹세하기도 하고, 관중과 포숙아처럼 생사와 부귀영화를 함께 하기도 한다. 그러나 왕후장상이 아닌 보통사람이 가지는 우정의 본질에 가까운 고사는 백아와 종자기 이야기이다. 종자기가 병으로 죽자 다시는 거문고를 연주하지 않았다는 백아의 이야기처럼 지음(知音)은 우정이 시작되고 지속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도 친구란 두 신체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라고 했다.

 자신의 참된 모습을 마주하고 싶다면 자신의 친구를 보면 된다. 맙소사! 저 친구가 나의 진면목이구나! 주인에겐 무척이나 관대한 인간의 뇌는 가치나 사실의 여부보다는 의뢰인의 승리를 추구하는 변호사와 같이서 믿을 수 없다. 나는 유교문화시대에 태어나 서구식 교육을 받고 서양이 세운 문화적 표준 내에서 살아오고 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부락 단위의 집성촌에서 거대 도시로, 우리의 삶의 조건이 변화하였다. 어쩌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급격한 변화에 적응할 여유도 없이 현대에 내 던져진 구석기인이다. 외로운 사람만이 사랑이 가능하고 고독한 사람만이 우정이 가능하다.

 현대인은 까다로운 인간관계에서보다 기계에서 위안을 찾을 수도 있다. 아니면 강아지나 고양이가 더 위안을 줄 수도 있다. 우리는 형제애와 우정의 위기, 아니 친밀한 인간관계 전체가 위협을 당하는 시대를 통과하는 중이다. 그러나 인간이 육체를 벗어 던지지 못하는 한 인간에겐 따뜻한 애정이 필요하다. 사랑과 우정은 인간의 영혼이 성장하고 위로받는 소중한 통로이다.

 최정호<최정호 성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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