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넬리 교장의 ‘아주 특별한 수업’
엄넬리 교장의 ‘아주 특별한 수업’
  • 김영호 기자
  • 승인 2017.06.15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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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긍지를 느낍시다”
▲ 15일 엄 넬리 한민족학교 교장이 전주근영중학교를 방문해 역사특별수업을 실시한 가운데 엄넬리 교장이 학생들에게 진지한 모습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김얼 기자
 “스탈린의 강력한 통치 아래 눈치 보며 살았던 우리 까레이스키는 언제 어디서나 고향 땅 한국을 동경하고 그리워하며 살았습니다.”

 엄넬리 니콜라예브나(77) 러시아 모스크바 1086학교 교장이 15일 오후 전주 근영중학교 교실을 찾아 손자 손녀와 같은 나이의 학생들과 아주 특별한 교감을 나눴다.

 이날 특별 수업은 이 학교 유네스코 동아리 학생 33명이 참석한 가운데, 역사를 가르치는 조은경 수석교사와의 인연으로 이뤄졌다.

 수업 초반 조 교사의 염려와 달리 엄 넬리 교장은 다리가 불편한 상태에서도, 오랜 교육계 경험을 바탕으로 유창한 우리 말을 풀어내며 학생들의 시선을 모았다.

 검은 머리카락과 깊은 눈동자, 그리고 한국인의 정이 느껴지는 미소.

 우리 말을 어색하지 않게 말하던 그녀는 20여년 전 모국인 우리나라에 처음 방문하면서 본격적으로 한국어를 습득했다고 밝혔다.

▲ 15일 엄 넬리 한민족학교 교장이 전주근영중학교를 방문해 역사특별수업을 실시한 가운데 엄넬리 교장이 학생들에게 진지한 모습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김얼 기자
 한 평생을 고려인(까레이스키)으로 러시아 타국 땅에 살면서 슬픔과 아픔을 간직한 엄넬리 교장.

 “올해로 까레이스키가 강제 이주한 지 80주년이 되는데, 강원도 영월이 고향인 우리 증조부와 조부모, 부친은 연해주로 이주했다가 스탈린의 한인 강제 이주 정책으로 중앙아시아로 쫓겨 다녔어요.”

 엄넬리 교장은 이 과정에서 친 언니가 동사하는 아픔도 겪었고, 친 오빠가 한국말을 했다는 이유로 처벌까지 받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봐야만 했다.

 그녀는 고려인으로 현지에서 모진 핍박과 멸시를 견디며 살아 왔지만, 한민족의 자긍심을 가지고 “배워야 산다”는 신념으로 열심히 역경을 이겨냈다고 전했다.

 엄넬리 교장은 “지난 시대에 유태인들이 똑똑한 민족으로 인정 받았다면, 세계 어느 나라를 가더라도 요즘엔 우리 한국인들이 영리한 민족으로 칭찬 받는다”며 “어린 학생들은 좋은 환경 속에서 자라난다는 것을 잊지 않고 한민족의 긍지로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 수석교사는 “까레이스키라고 불리던 고려인들은 지난 100여년 전부터 강제 이주로 고난과 시련을 겪은 우리의 서글픈 민족사”라며, “엄 넬리 교장선생님의 삶을 통해 우리 근현대사를 재인식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엄넬리 교장은 민주평화통일 자문위원회 및 중앙아시아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러시아 모스크바시 교육문화자문위원장과 모스크바 1086학교 교장으로 있다.

  

김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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