浩然之氣, 천왕봉에서 백록담으로
浩然之氣, 천왕봉에서 백록담으로
  • 국방호
  • 승인 2017.06.14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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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한에서 태어나 최고봉인 한라산에 한 번은 올라야지!” 전체가 사진 촬영을 위해 700m 고지인 성판악 주차장에 늘어서니 짙푸른 숲을 배경으로 젊음이 더욱 강한 빛을 발하고 늘어선 학생들 사이로 담임들이 들어가니 마치 열 폭의 병풍을 펼친 것 같다.

  담임과 산악인 5명을 동반한 산행은 1반부터 시작되었다. 첫 휴게소인 쑥밭대피소까지는 비교적 순탄해 여유를 즐기며 주변경관도 살폈다. 연수차 가 뉴질랜드에서 보았던 영화 아바타의 이끼 낀 원시림과 같은 신비스러움이 시선을 붙잡고 핀란드의 트레킹코스에서 느꼈던 맑은 공기가 폐 속으로 깊이 스며드는 듯했다. 그러나 힘들어 뒤처진 학생을 보면서 금새 교사의 본능을 일깨웠다.

  도착한 날 가랑비를 맞으며 야자수와 벌집모양 바위기둥으로 이루어진 주상절리에서 너울대는 짙푸른 바다로 이국적인 분위기에 빠져들었고 그 다음날은 학급별 행사라 관광 위주의 활동을 해 풀어진 상태로 산에 올랐으니 힘들 수밖에. 일정에 어울리지 않은 큰 가방으로 시선을 끌면서도 등산화와 지팡이를 넣어 온 덕에 지쳐 쉬는 학생들을 초콜릿과 물로 달래며 팔목을 잡아끌었다. “역시 유비무한이야!”

  드디어 1,700고지 진달래꽃 휴게소에 닿으니 대부분이 도착해 점심을 먹고 있었다. 역시 젊음이 좋아! 꿀맛이다. 1시 반에는 정상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말에 서둘러 출발했다. 능선이 훤히 드러나 쉬운 듯했으나 돌계단으로 이루어진 등산로에서는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냈다. 그러나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마는...” 위안을 삼으며 젖 먹던 힘까지 발휘했다.

  “드디어 정상이다!” 1,950m 표지석에 손을 대니 저만치 아래 바닥 한 쪽을 겨우 채운 백록담이 보인다. 기쁨에 젖기도 잠시 전화벨이 울렸다. “여기, 천왕봉에 막 도착했어요!” 지난달 11일 오후 1시 11분이다. 1,915m 천왕봉에 오른 1학년부장에게서 정상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온 것이다. 순간 남한의 1, 2봉을 정복했다는 벅찬 감동이 다가왔다.

  1학년은 지리산으로 수련활동을, 2학년은 제주도로 현장체험학습을 추진했다. “저 보고 비정상교사래요!” 정상에 오르지 못한 여선생님을 놀리는 방식인데 듣고 보니 마음이 짠하다. 진달래꽃 휴게소에서 사람들이 먹고 버린 쓰레기가 너무 많아 7명의 학생들과 수거해 내려오느라 더 이상 못 올라갔단다. “정상은 못 갔지만 좋은 일을 했다는 것이 너무도 보람스러워요!” 말씀도 고맙다.

  체험활동에 대한 수기를 받아 우수작품을 시상했다. “천왕봉에 도착하니 세상의 모든 것이 내 발 아래라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았고 경치도 환상적이었다.” “산에 오를 때 친구들과 함께 올랐기에 정상에 오를 수 있었듯이 공부도 나 혼자만 잘하는 것보다 도와가며 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조금 힘들다고 쉬면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이다.”

  “지리산(智異山)이 다름을 알아 어리석은 자가 현명해진다”와 “쇼트트랙 선수가 앞에서 리드하기가 뒤따라오기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는 표현은 “혼자 가면 빨리 가지만 함께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는 생활의 이치를 재삼 깨닫게 해준다.

  일상에 감사한다. 평소 아침운동으로 산책하는 완산공원도 감사하고 주말이면 반가이 맞아주는 학산, 8시간의 체력을 지탱해준 모악산도 고맙다. 감사할 일이 많다. 산행이 어려운 소수의 학생을 데리고 올래길을 다녀온 선생님, 자연을 지키기 위해 공중도덕과 단체생활의 의미를 되새겨주신 선생님들, 그래도 우린 큰 소득을 얻었지요. “작은 고난을 넘기기 못하면 앞으로 다른 것들도 쉽게 포기할 것 같아 이왕 가는 것 끝까지 가보자” 는 수기처럼…

 국방호<전주영생고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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