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토크라시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민주시민교육
메리토크라시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민주시민교육
  • 차상철
  • 승인 2017.06.13 1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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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전북교육정책연구소가 주최하여 학교에서의 민주시민교육이라는 주제로 교육정책포럼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민주시민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학교현장에서의 실천 과제들에 대해 진지한 논의가 있었다. 특히 발제자로 참석한 철학자 장은주 교수는 우리 사회와 교육을 지배하고 있는 메리토크라시 이데올로기가 민주시민의 형성을 방해하고 있다고 진단하고, 민주시민교육은 미래의 세대들이 반민주적이고 반평등주의적인 메리토크라시의 위계의식에서 벗어나 시민적 자존감을 정립할 수 있도록 돕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필자는 그의 주장에 크게 공감하면서 우리 사회와 교육에 길게 드리워져 있는 메리토크라시의 어두운 그림자에 대해 다시 한번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라는 용어는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 1958년에 처음 만들어낸 신조어로, 본래의 뜻은 ‘능력자 지배체제’라는 부정적 의미로 만들어진 말이다. 그런데 민중(demos)에 의한 지배체제(cracy)인 데모크라시(democracy)를 민주주의로 칭하는 것처럼 메리토크라시도 ‘능력주의’, ‘실력주의’, ‘업적주의’ 등으로 칭하다 보니 본래의 부정적 의미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굳이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능력지상주의’라고 해야 합당할 것이다.

 메리토크라시는 부와 명예 등 사회적 재화를 타고난 혈통, 신분, 계급에 따라서가 아닌 오로지 능력에 따라 배분하자는 이념에 기반을 둔 사회체제이다. 따라서 메리토크라시에서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더 많은 부와 권력과 명예를 가지게 되는 것이 배분의 정의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러한 배분의 정의가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공정한 경쟁이 담보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현실처럼 부모의 재력이 학생의 학업성취도와 학교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재벌의 경영권이 무난하게 세습되고, 금수저와 흙수저가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나뉘어서 부와 지위가 대물림되는 사회에서 메리토크라시 이데올로기는 가진 자의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지·덕·체가 조화롭게 발달하도록 인간을 양성해야 하는 학교는 메리토크라시를 지탱하는 장치로 변질하였다. 학교는 능력자 선별이라는 임무를 담당하면서 학생들을 성적에 따라 줄 세우는 것을 핵심 기능으로 갖게 된다. 그러다보니 성적과 학벌 경쟁이 과도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학교가 입시경쟁을 위한 교육에 매몰되어 있고, 대학도 수준 높은 교육과 연구는 뒷전에 둔 채 입시성적으로 학벌의 상위에 위치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비록 능력에 따른 어느 정도의 차별은 인정하고 감수한다 할지라도, 그 차별이 심각한 사회적 불평등과 소외로까지 이어지는 현실에 우리는 경각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승자독식이 정당화되고, 정당한 것으로 포장된 불평등이 고착화되고 심화하면서 새로운 신분사회가 만들어지고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대중이 메리토크라시의 이데올로기에 내면화되어 체제에 저항할 명분이 없다고 느낄 뿐만 아니라, 학벌로 줄 세우며 능력에 따른 사회적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하는 반평등주의적 의식을 스스로 강화한다는 것이다. 용이 되지 못한 개천의 수많은 미꾸라지들이 일상적 자존감마저 상실한 채, ‘헬조선’을 외치는 까닭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메리토크라시 그림자를 걷어내기 위해 학교에서의 민주시민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장은주 교수는 시민적 주체로서의 경험을 강조하고 있다. 학교에서의 민주시민교육은 이제 주지주의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교육주체들 간 민주적 상호인정의 관계를 바탕으로 학생들이 자기 신뢰와 자존감을 갖추고 시민적 삶의 가치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게 해줄 실천적 경험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이제 학교는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경험의 장으로 거듭나야 한다.

 차상철<전북교육연구정보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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