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복지법… 그 후
정신건강복지법… 그 후
  • 김형준
  • 승인 2017.06.08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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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 5월 전면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이 1년이 지나 드디어 지난 5월 30일부터 시행되었다. 그간 찬·반 그리고 수많은 논쟁을 뒤로하고 좋든, 싫든 이제 새로운 법에 따라 우리나라의 정신건강정책이 새롭게 바뀌게 될 것이다. 새로운 법이 여러 정신건강에 관련된 규칙과 정책을 담고는 있지만, 사실 이번 법 개정의 핵심은 ‘강제입원’이라 불리는 비자발적 입원의 절차를 엄격하게 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다른 질병들처럼 스스로 병을 치료받거나 자기결정권에 따라 스스로 치료를 포기하거나 한다면 굳이 이런 복잡한 법을 만들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조현병, 조울병, 알코올중독 등과 같은 일부 정신질환은 자기결정권을 판단할 능력에 손상이 오는 것이 주요 증상이고 따라서 스스로 병을 치료받고자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한 정신질환은 스스로 치료를 포기한다고 해서 자신만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 가족, 사회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부득이 치료를 강제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어 ‘메르스’같은 심각한 전염병은 스스로 치료를 포기하고자 해도 타인과 사회에 심각한 위해를 가할 수 있기 때문에 격리치료를 강제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 할 수 있다.

 개정 전 법에 따르면 정신질환자에게 입원치료가 필요하다는 정신과 전문의의 의학적 판단과 이에 대해 2인의 보호의무자가 동의할 경우 환자 스스로 치료를 거부해도 강제 입원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런 정신보건법이 지나치게 자의적 판단의 여지가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여론에 따라 이번에 법 개정을 하게 된 것이다. 이전 정신보건법 문제점의 근거로 보통 두 가지의 이유를 말하고 있다고 한다. 첫 번째는 매스컴을 통해 뉴스화된 사건들처럼 정신질환자가 아님에도 보호자의 악의적 의도에 따라 강제입원을 하게 된 사건이고, 둘째로는 OECD 국가 평균보다 월등히 높은 비자발적 입원율과 장기간의 입원기간을 그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현재 전국 정신의료기관의 비자발적 입원환자가 약 8만 명 정도임을 감안할 때 정신보건법이 시행되어 온 지난 20년 동안 비자발적 입원의 건수는 아마도 수십만 건 이상이 될 것이다. 그중에 과연 환자가 아닌 데 환자로 몰려 강제입원하게 된 사건으로 처벌받거나 문제가 된 경우가 몇 건이나 될까? 서류미비 등과 같은 절차적 오류를 빼고 순수하게 환자가 아닌데 환자로 몰려 입원한 사례는 전문의인 필자의 기억에도 열 건 남짓한 것으로 생각된다. 물론 전문의의 오진이나 보호자의 악의적 거짓말에 의한 억울한 입원은 발생할 수 있기에 단 한 사람도 억울한 사연이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은 몇 번을 강조해도 당연한 일을 것이다. 그러나 그 문제점이 ‘정상인(?)의 정신병원 강제입원’이라는 선정적 이슈성 때문에 부풀려진 측면도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된다. 아무튼 첫번째 이유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이번 법 개정의 근거가 된 더 큰 이유, 즉 OECD국가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비자발적 입원비율과 장기 입원은 통계로 증명된 사실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우리나라의 정신질환자들의 입원 건수와 입원기간은 높은 것일까? 대한민국의 1,000여개의 정신의료기관과 3,000여명의 정신과 전문의가 실력이 없거나 돈벌이로 입원기간을 부풀리는 비양심적 집단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정신질환을 돌보아야 하는 그 많은 보호의무자들이 환자를 방치하고 가족을 정신병원에 감금(?)하는 매정하고 나쁜 사람들이라서일까? 치매환자의 예처럼 평생 치료를 받아야 하고, 점점 기능이 떨어져 가는 환자를 돌봐야 하는 가족이 얼마나 큰 고통과 부담을 안고 살아야 하는지 필자는 정신과 환자를 진료한 이후 현장에서 매일 생생하게 지켜봐 왔다. 단언컨대 이것은 비양심적인 정신의료기관이나 실력없는 의사의 문제도, 매정한 보호자의 문제도 아니라 바로 법 개정을 주도한 정부당국의 문제이자 책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멀쩡한 가족들도 서로 얼굴 한번 제대로 보고 저녁식사 하기 어려운, 가족의 기능과 의미가 나날이 변해가는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가족들에게만 정신질환자들의 보호·부양의무를 감당케 하는 것은 예초 불가능한 일이다. 지난 20년간 지역사회에서 정신질환자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인프라와 시스템을 만들지 못하고 이를 방치함으로써 정OECD 국가 꼴찌의 통계를 만들어 낸 정부가 법 개정만으로 이를 해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퇴원한 환자가 집과 사회로 못 가고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는 회전문 현상과 수년간 장기 입원하게 되는 현실은 그동안 가족과 병원에만 정신질환자의 관리를 방치한 정부의 무책임한 정책의 결과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정부 스스로 정신질환에 대한 늘어나는 의료비를 회피하고자 대다수를 차지하는 의료급여환자의 진료비를 건강보험환자의 60%에도 못 미치게 책정하여 차별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결국 싼 약, 적은 면담횟수, 적은 의료진을 유지할 수밖에 없고 의료의 질을 떨어뜨려 환자들이 더욱 만성화되어 점점 사회와 멀어지게 하는 악순환을 초래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법이 시행되는 지금도 이러한 본질적 문제에 대한 준비와 대책이 없이 일단 입원을 까다롭게 하고 퇴원을 유도하여 통계 수치만을 낮춘다는 발상은 결국 재앙적 문제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하루빨리 인적, 물적 투자를 통해 의료의 질을 높이기 위한 수가체계의 개선과 퇴원 후 환자들이 지역사회에 적응하도록 돕는 관리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이번 개정 정신건강복지법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임을 정부는 명심해야 할 것이다.

 P.S 5월 30일 법 시행 일주일 전 정부청사와 도청에서 전국의 민·관 정신건강관계자를 대상으로 입법예고된 하위법령을 교육한 지 불과 일주일 만에, 50% 이상 바뀌어 시행 당일, 그것도 오후 늦게 공포하여 일선 기관의 대혼란을 초래한 일이 있었다. 이것은 명백히 정부기관의 ‘신뢰보호원칙’을 어기는 행위로, 이번 법 개정이 얼마나 졸속인지 정부 스스로 증명하는 예로써……. 그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다.

 김형준<신세계효병원 진료원장/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부안군 정신건강증진센터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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