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민주항쟁이 오늘에 주는 교훈
6.10 민주항쟁이 오늘에 주는 교훈
  • 고재흠
  • 승인 2017.06.08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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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30년 전 1987년 초에 발생한 이 사건으로 6.10 민주항쟁은 시작됐다. 민주화 운동을 하다 경찰에 연행된 서울대 재학생 박종철 군이 갖은 고문 끝에 끝내 숨졌다. 당시 수사관은 박군의 죽음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책상을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발표했다. “탁” 하면 “억”하고 죽는 게 말이나 될 소린가?” 경찰은 초기 발표에서 책상을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터무니없는 얘기를 하며 발뺌을 하였으나, 시체부검 결과 전기고문과 물고문에 의한 살인인 것으로 밝혀졌다.

박종철 군의 죽음으로 국민들은 분노했고, 거리로 몰려 나왔다. 전국 18개 도시에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가 주최하는 대규모 가두집회가 열렸다. 하루 전인 6월9일 연세대 학생 수천여명이 시위를 벌이던 중 연세대 이한열 군이 최루탄을 맞고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국민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고, 급기야 사상 최대 인원인 100만 명 이상이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전두환 군사정권은 4·13호헌조치를 철회하고 29일에는 노태우 민정당 대표가 국민들의 민주화와 직선제 개헌 요구를 받아들인다는 ‘6.29선언’을 발표했다. 국민이 나서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발전시킨 두 번째 혁명이었다.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현 헌정체제는 6.10 민주항쟁에서 비롯됐고, 그 이면엔 故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진실을 공개한 천주교회 역할이 있었다. 최근 들어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넘어 민주주의의 질이 거론되고 있지만, 이도 6.10 민주항쟁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래서 6.10 민주항쟁은 ‘민주화의 꽃’이라고 불리고 있다.

6월 항쟁은 한국 현대사의 큰 분수령이었다. 물론 4.19나 5.18 등 분수령이 많았지만 6월 항쟁은 군사독재와 싸워 이겼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 큰 변화를 가져온 일대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6월 항쟁은 군사정권에서 문민정권으로, 독재에서 민주로 그리고 개발과 성장 중심에서 분배의 조화와 삶의 질을 고민하는 단계로 나아가는 분수령이었다. 물론 일부에선 6월 항쟁이 미완의 혁명이라는 평가가 많다. 지금도 6월 항쟁은 진행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름대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광장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1조 2항은 광장에서 가장 절실하게 체감됐다.

1987년 거리에서는 박종철ㆍ이한열 군을, 최근 박근혜ㆍ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인해 박 전 대통령을 탄핵하고 구속시킨 것도 다 촛불 광장에서 나왔다. 광장의 승리는 시민의 힘으로 만든 무혈혁명이었다.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평화혁명이자 성숙된 시민들이 만들어낸 민주주의의 승리다.

이처럼 그 어떤 독재자도 국민의 힘을 이기지 못한다. 시리아의 카다피, 이라크의 후세인,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독일의 히틀러 등 모두 독재자다.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의 이승만ㆍ박정희ㆍ전두환도 독재자다. 독재자는 그밖에 일일이 거명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독재자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전부 멸망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제30주년 6.10민주항쟁 기념식’이 오는 6월 10일 서울광장에서 열린다고 한다. 보도에 의하면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6.10 항쟁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할 것이라고 한다.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인권변호사 출신 문 대통령이 내놓을 메시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6.10민주항쟁은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를 바꾸고 1987년 체제를 만들었다. 우리가 지금을 제6공화국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가 6월 항쟁 때문이다.

수필가 고재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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