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초승달로 떠 있는 큐피트의 붉은 화살
아직도 초승달로 떠 있는 큐피트의 붉은 화살
  • 김동수
  • 승인 2017.06.08 14: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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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의 금요 전북문단 / 41.유대준(兪大濬: 1960-)
전북 완주 출생. 1993년 <<문학세계>>로 등단. <금요시담> 동인과 전북시인협회장을 역임하고 1996년 시집 <<눈 바로 뜨고 게는 옆으로 간다>>, <<춤만 남았다>>(2011)를 발간함. 전북시인상, 해양문학상, 전북문학상을 수상하며 전북대병원 영상의학과에 근무하고 있다. ??

 

 강에 다리가 놓이고 공장이 들어서고

 폐수가 강을 뒤덮어도

 기어이 버티고 섰던 물풀이

 까만 그림자로 흔들거린다

 뿌리째 뽑혀 떠내려가는 것을 보았다

 낄낄대며 흐르는 물 강둑에서

 뼈대 앙상한 정강이 드러낸 채

 어여 떠나라고 어여 떠나라고

 아들의 등을 떠미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눈물도 보았다.

  -<아버지의 이중주>에서

 

  평생 고향을 떠나지 못하고 가난 속에서 버텨 오신 아버지의 ‘까만 그림자’ 그것은 ‘천 년을 고개 숙여 살아도’ ‘가난만 빙빙 도는’(<휴경지>) 척박한 농토에서 ‘흙이 뿌리이고- 혈육’ 이라며 ‘맨땅만 후려치던 아버지’(<천명>)에 대한 애증과 그러면서도 ‘어여 떠나라고/ 아들의 등을 떠밀던’ ‘아버지의 눈물’등이 오버랩된 유대준 시의 원형질이다.

 

  지금쯤 우리 집 뒤란을 개망초꽃이 지키고 있겠다. 채워져야 할 곳은 비어 가고 문명에 절은 난 숨 쉴 틈새 하나 없이 막힌 가슴으로 삭정이 부러지는 소리조차 잊으며 인형이 되어 간다. 시를 내세운 펌프질이 내 회로에 피를 돌게 할까? [...] 내면의 나를 무엇으로 다스릴 수 있을지 자주 절망을 한다. -<전북시인자선대표시선집- 유대준편, 시작노트>에서

 

  ‘문명’에 절어 ‘숨 쉴 틈새 하나 없이’ 내몰린 파편적 존재로서 ‘나(인형)’와 고향집에 두고 ‘집 뒤란의 개망초꽃’, 곧 현실적 자아(ego)와 본래적 자아(self), 이 양가(兩加) 사이에서 ‘시의 펌프질’로써 막힌 ‘회로에 피를 돌게 하’며 나의 정체성을 모색하고 있다.

 

 

  허공에 눌려 ㄱ자로 굽은 할머니

  땅만 보며 아주 느리게 걷는다.

  겨우 한 걸음 내딛기 위해

  구석구석 온 힘을 발목에 모아

  걸음마 익히는 첫돌박이처럼 몸을 비튼다.

  [...]

  비틀비틀 감나무 아래까지 왔다.

  미세하게 어두워지는 초저녁 무렵

  더 느리지 않고는 이승 빠져나갈 수 없는 속도로

  한 걸음 뗄 때마다 몸을 마구 흔든다.

  지난 날 움켜잡은 시간의 끈이

  발목을 감는지/ 점점 걸음은 없어지고

  아득하다/ 춤만 남았다.

  -<춤만 남았다>에서

 

  유년의 순수와 자기의 정체성인 고향을 잃어버린 상실감과 그걸 두고 온 회한에서 비롯된 그의 시는 더욱 치밀하고 정치한 묘사와 구조로 시적 깊이와 감동을 더하고 있다. 문명과 세월에 밀려 허물처럼 ‘비틀거리며’ 남은 생을 연명하고 있는 노인네들의 삶으로 시선을 옮겨, 고향을 잊고 청춘을 잃어 빈 껍질만 남아 뒤안길로 밀려나 있는 부모 세대들에 대한 연민의 정이 뜨겁다. ‘춤만 남았다’는 비약적?반어의 끝행이 이 시에 비극적 정조미를 더하는 가히 경이로운 역설기제라 하겠다.

 

 바다 위에 붉은 과녁 하나 떴다/ 내안에 부러진 큐피터의 화살/[...] 쏜살같이 날아가 박힌 /화살을 삼킨 해가 /폭발하듯/ 참 부시다// 저녁만 남은 바다에 흉터처럼/ 초승달 떴다. -<과녁> 전문

 

  어디엔가 날아가 무엇인가 되고 싶은 화자의 붉은 화살이 흉터처럼 남아 아직 초 승달로 떠 있다. 그 초승달이 머잖아 보름달이 되어 온누리를 환하게 비출 미래지향적 열망의 시라 하겠다. (김동수: 시인,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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