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참전용사 유족에게도 관심을”
“6.25 참전용사 유족에게도 관심을”
  • 이정민, 임덕룡 기자
  • 승인 2017.06.05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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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의달 기획] 故 고재천 열사 아들 고용석씨 인터뷰
▲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전북보훈회관에서 고용석 사무국장이 당시 상황을 설명해주고 있다./김얼 기자

 “이 땅을 위해 희생한 선열들의 가족에게도 정말 제대로 된 정책과 지원이 실현됐으면 좋겠습니다.”

 6·25 전쟁 유공자 유족인 고용석(70) 씨는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전쟁의 아픔을 그대로 느끼고 있다.

 제62회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고 씨는 옛 기억을 회상하며 유족을 위한 결의를 다졌다.

 6·25전쟁 발발 당시 3살 불과했던 그에게 있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그나마 당시 상황과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어머니의 전언이 전부였다. 고 씨의 아버지 故 고재천 열사는 당시 전주경찰서 소속으로 전주 소양지역 시민들을 전쟁에서 지키는 임무를 맡았다.

 고용석 씨는 “전쟁 당시 중공군의 개입으로 1951년 1월 4일 서울이 중공군에 의해 서울이 함락돼 정부는 부산으로 후퇴했다”며 “전주에 있던 경찰, 군인 등 많은 사람들이 전주형무소에 갇혔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당시 전주형무소에는 고 씨의 아버지도 있었다. 1.4후퇴 이후 재정비를 마친 남한군의 기세에 북한군은 형무소에 갇힌 사람들을 무차별하게 학살하며 후퇴했다.

 서로 생사조차 알 수 없었던 고 씨의 가족은 비극적인 모습으로 만났다.

 1953년 8월 14일 오랜 피난생활 끝에 전주로 다시 돌아온 고 씨와 어머니는 싸늘한 시체가 된 아버지와 마주했다. 당시 상황을 설명하며 눈물을 보인 고용석 씨는 눈시울이 붉어진 모습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고용석 씨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정말 힘들게 살아왔다”며 “나뿐만 아니라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모든 유족들이 힘든 건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전쟁이 끝난 후 정부는 유공자를 위한 정책은 마련했지만, 유공자 유족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이에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한 고 씨와 같은 참전용사 유족들은 어려운 상황에서 자라야만 했다.

 고 씨는 “1991년부터 정부를 대상으로 피나는 투쟁 끝에 2002년이 되어서야 유족들을 위한 법안이 만들어졌다”며 “하지만, 연계와 승계가 되는 연금이 아닌 수당으로 지급받고 있으며 6.25 관련 많은 단체 가운데서도 전몰군경 유족회 지원이 가장 열악하다”고 설명했다.

전몰군경 전라북도 김영도 지부장은 “국가에서 유족들 희생·공헌 정도에 따라 보상하겠다고 기본법을 정해놨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며 “하루빨리 유족들에 대한 제대로 된 복지와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정부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전했다.

 한편, 전몰군경회 전북지부에 등록된 6·25 참전 용사 유가족 회원은 현재까지 2139명이 등록돼 있다.



이정민, 임덕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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