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학생들
요즘 대학생들
  • 김종일
  • 승인 2017.06.04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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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덥지도 춥지도 않고 일 년 중 딱 좋은 시절이 요즘이다. 또 유월을 맞아 딱 맞게 자지러진 창밖 캠퍼스에 딱 좋은 시절을 보내는 청춘 대학생들이 그득하다. 아마도 자연과 사람의 멋들어진 조화가 어우러지는 요즘의 캠퍼스가 가장 아름답지 않을까 싶다. 대학에 근무하는 장점 중 하나가 젊은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일 게다. 신구가 서로 부대끼면서 직간접적으로 서로 보고 배울 수 있는 환경이 가진 매력은 크고도 크다.

 지난 20여년을 돌아보면 안타깝게도 캠퍼스의 교수와 학생의 관계는 점점 멀어져만 갔다. 대학뿐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이 삭막해진 탓도 있겠지만, 대학의 경우를 보면 일단 교수들이 교육에 투자할 시간이 별로 없다. 과거의 대학은 숫제 학생들 가르치는 곳이었지만, 요즘은 연구와 산학협력 활동이 훨씬 더 강조되는 탓에 강의는 거의 허드렛일이 되어 버린 느낌마저 든다. 그래도 대학원생들은 연구를 같이하는 까닭에 자주 부딪히는 편이지만, 학부생들은 강의시간 이외에는 볼 일이 거의 없다. 특히 계단식 강의실에 앉아 있는 백여 명의 학생들은 이름은커녕 얼굴조차 기억하기 어렵다. 기억을 돌아보면 15년 전만해도 학생들과 가끔 막걸리도 한 잔씩하고 노래방도 가곤 했었는데, 요즘 그랬다간 구설수 정도가 아니라 시말서를 써야 할 판이다. 아무튼 대학의 분위기가 그렇다. 이런 연유로 십여 년 전에 학부생들에게 지도교수 의무 면담 제도가 생겼다. 학기에 적어도 한 번 이상 지도교수를 면담해야만 한 학기 수료가 인정되는 제도다. 제 발로 찾아오는 학생들은 매우 드무니 이것이 사실상 학부생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유일한 자리다. 여느 때처럼 이번 학기 면담도 끝냈다.

 얼마 전, 이미 퇴직했거나 그 언저리인 선후배들과 있었던 막걸리 자리에서 청춘을 부러워하며 속절없이 흘러가버린 세월을 탓하다가 누군가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어찌하겠느냐는 우문을 던졌다. 놀랍게도 다섯 명 모두가 청춘이 그립고 부럽긴 하지만 다시 돌아가기는 싫다며 고개를 저었다. 숱한 고민을 짊어지고 걸어왔던 어둡고 막막했던 그 시절이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다는 것이다. 그냥 지금 가진 것에 만족하면서 큰 병치레만 안하다 가는 게 오히려 좋단다. 비단 이때뿐만이 아니다. 물론 회춘은 하고 싶지만 그 시절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은 거의 만나질 못했다. 우리 세대 역시 적어도 요즘 유행하는 헬조선을 사는 청춘들 못 지 않은 고난의 청춘기를 보냈다는 얘기가 된다.

 지난 20여 년간 대학생들을 보아온 느낌은 여러 면에서 점점 더 밝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강의실의 전반적인 분위기도 그렇고 학생들 개개인의 표정과 삶을 대하는 자세도 그렇다. 우리도 그 시절을 살아보았고, 필자 애들 둘이 대학을 다니고 있고, 또 오랫동안 그들을 지켜보다 보니 이제 지나가는 학생들 모습만 보아도 대략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학생의 표정을 보면 무슨 얘기를 할지 대개 감이 온다. 학생들과 오가는 대화의 주제는 뻔하다. 학업, 진로, 가족, 이성, 경제적 상황 등 개인적인 문제 그리고 교우와 종교 등 사회적인 내용들이다. 사생활과 관련된 속 깊은 얘기까지 주고받는 경우는 드무니 간과하는 부분이 적지 않겠지만 전반적인 경향은 과거에 비해 훨씬 긍정적이며 낙천적이라는 사실이다. 굳이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진지하지 않아 경솔해 보이기까지 한다.

 가장 많이 오가는 대화는 물론 졸업 후 진로에 관한 것들이다. 아직 명확한 진로를 정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지만, 그들도 자기의 미래를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분명히 알고 있다. 대학생이면 이미 성인이다. 하지만, 크게 두 부류로 분류할 수 있겠다. 꾸준히 노력하는 학생들과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거나 또는 못하는 학생들이다. 의지와 노력 부족으로 안하는 학생들이야 어쩔 수 없지만,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경우가 늘어나는 추세다. 진로선택에 있어 가정환경, 특히 경제적 상황이 미치는 영향이 점점 커진다는 느낌이다. 과거와 달리 요즘에는 전문직이 아니라 단순한 취업에 필요한 스펙을 갖추기 위해서도 적지 않은 비용이 필요하다. 몇 학기 휴학하고 알바로 악착같이 모아서 해결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세상이나 남의 탓으로 돌리는 학생을 아직 보지 못했다.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의 길을 찾아가고자 노력하는 어른스러운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안쓰럽다. 이렇게 우리 사회가 급속히 고비용 사회 구조로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심각한 문제이다. 돈 때문에 아예 가고 싶은 길을 가보지도 못하거나 중도에 포기해야 하는 학생들을 접할 때 마음은 무척 아프다.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하는 소위 ‘넘사벽’을 허무는 일이 시급하다. 그래도 우리는 개천에서 용 나던 시절에 살지 않았던가.

 김종일<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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