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茶時)와 옛이야기
다시(茶時)와 옛이야기
  • 이창숙
  • 승인 2017.06.02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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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7>
〈작설차 한잔 다리며〉 한지 수묵화, 담원作, ㈜해가온 소장
 나른한 오후 차 한 잔이 일상의 에너지가 된지 오래이다. 아침 일터에서 마시는 모닝커피는 그날 해야 할 일의 무게를 말해주기도 한다. 요즘 대통령 손에 들린 커피가 기사거리로 등장한다. 이러한 모습은 조금도 특별하지 않은 우리 삶의 모습이건 만 …, 그동안 겹겹이 쌓인 벽을 허물고 소통과 에너지를 모으는 장면이기에 아름답게 비춰지는 것 같다.

 사람 사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듯하다. 이익(李瀷, 1681~1763), 『성호사설(星湖僿說)』 권12 「인사문(人事門)」에 다시(茶時)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당시 ‘다시(茶時)’라는 말은 사헌부(司憲府)의 관원들이 하루에 한 번씩 모여 공사(公事)를 의논하며 회의를 하던 일을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즉 ‘차를 마시고 모임을 파 한다’는 뜻이다. 감찰들은 불법적인 행위를 하거나 조정의 뜻에 어긋난 일을 한 관원이나 풍속을 어지럽힌 도성의 사민(士民)등을 적발하여 다시(茶時)에 대간(臺諫)에게 고하는 일을 하였다.

 밤에 열리는 야다시(夜茶時)도 있었다. 관원 중에 불법을 행한 자가 있으면 사헌부 감찰들이 밤중에 그의 집 근처에서 다시를 열어 그의 죄상을 밝히고 흰 판자에 써서 문 위에 건다. 그리고 가시나무로 그 문을 봉한 뒤에 서명하고 해산한다. 결국 그 사람은 집안에 갇히게 된다. 이처럼 감찰이 다시를 행한 기록이 많았다고 한다.

 규율을 잡는 일에 ‘다시(茶時), 차를 마시는 시간’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에 궂이 해석을 하자면, 인간의 지적능력을 자극하는 카페인의 영향일수도 있다. ‘옛 부터 성현들이 차를 즐기는 것은 차는 군자와 같아 사악함이 없음(古來賢聖 愛茶 茶如君子性無邪)이다’는 의미 이고 특히 맑고 명석한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여하튼 차는 생리적 기능과 정신적 기능을 모두 지닌 덕분에 오늘날까지도 웰빙음료이며 정신적 음료가 되어있다.

 차와 관련되어 붙인 이름들은 대부분 차 문화가 가장 번성했던 고려 때부터 이다. 사찰과 귀족 중심이었지만 차를 사고 팔 수 있는 다점(茶店)이 거리에 있어 일반 백성들도 접할 수가 있었다. 목종 10년 7월에 남녀 80세 이상의 노인과 외롭거나 병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불러 잔치를 베풀고 술과 음식, 면과 비단, 차와 약을 하사하였다. 왕의 하사품에 차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노인들에게는 약용으로 음용되지 않았나 싶다. 그밖에도 각종 크고 작은 조정과 왕실의 행사에 차가 쓰였다. 조정에서는 이러한 행사를 전담하는 관청인 다방(茶房)을 따로 두었다. 다방의 관리는 정3품의 다방시랑(茶房侍郞)에서 부터 종 7품인 다방인리(茶房人吏) 까지 직급별로 품계가 있었다. 다방에 소속된 다군사(茶軍士)는 왕족에게 차를 올리기 위해 궁중 밖에서 차를 운반하고 준비하는 모든 책임을 맡았다. 이들은 군역을 면제 받았으며 국가의 각종의례에 참여했으며 왕의 행렬에 대동하였다. 또한 경상북도에는 다방원(茶房院), 경상남도에는 다견원(茶見院) 황해도에는 다정원(茶井院)을 두어 관리나 승려, 귀족들이 여행 중에 쉬도록 하였다.

 차례(茶禮)를 지낸다는 말이 있다. 이는 조선 태종 1년(1401년) 다례라는 용어를 처음 쓰기 시작하여 그 후에 개인과 왕실에서 국빈접대에 다례를 올렸다는 기록들이 있다. 조선후기에 이르러 유희(柳僖, 1773~1837)는 물명고(物名考)에 ‘다례는 삭망(朔望)에 사당에 헌다하는 것인데 주부(主婦)가 점다(點茶)하여 받친다’라고 했다. 오늘날 차례로 이어진듯하다. 차례를 지낸다는 말은 단지 차만을 대접하거나 올리는 것은 아니다. 음식상을 차려 함께 올리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담상(茶啖床)은 지방관아에서 감사나 관리에게 올리는 고급의 음식상이 기도 하다. 하지만 다담(茶啖)보다는 간소한 다담(茶談)으로 준비해 진정한 차의 맛을 느끼면 어떨까.

 

 / 글 = 이창숙 문화살림연구원 원장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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