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손님 자연은 주인
나는 손님 자연은 주인
  • 박성욱
  • 승인 2017.06.01 1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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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슬 보슬 비가 내렸다.

  “선생님 오늘 모악산 가요?”

 아침에 이 사람 저 사람이 물었다. 새벽부터 내린 비가 8시 넘어서도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문뜩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이 생각났다. 소풍날(지금은 현장체험학습이라고 부른다)이 가까워지면 설레고 기대하는 마음에 자주 물었다.

  “선생님 내일 소풍 가요?”

 일기예보를 듣고 비가 조금이라도 온다고 하면 소풍을 못 갈까 봐서 귀찮게 이 사람 저 사람이 물었다. 한 번은 일기예보에서 비 온다고 연기하고 또 연기하다가 온다는 비는 안 오고 날씨만 좋았다. 다음 주에는 무조건 간다고 했다가 소풍날 진짜 비가 와서 교실에서 도시락 까먹고 놀았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요즘 현장학습은 대부분 대형버스를 타고 움직이고 여러 가지 사전에 계약을 해야 돼서 연기나 취소를 하게 되면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들이 생긴다. 그래서 되도록 한 번 잡은 현장체험학습은 그대로 추진한다. 그런데 이번 상황은 조금 달랐다. 전주에는 비가 그쳤는데 일기예보도 8시까지 비라고 했는데 9시가 넘어서까지 보슬 보슬 비가 내렸다. 비 내리는 텅 빈 운동장에 대형버스만 우둑하니 서서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비가 그치기를 더 기다렸다. 9시 30분 정도 되자 비는 실비처럼 가늘어졌고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풀피리를 불다.

  아이들과 함께 전북 도립미술관 옆 숲 속에서 놀기로 했다. 나무랑 풀이랑 물기를 머금고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벚나무 잎 하나 따서 풀피리를 불었다. 신기했는지 서로 해달란다.

  “선생님 어떻게 불어요. 저도 해주세요!”

  “반질반질하고 얇고 질긴 잎이 잘 돼. 잎을 입에 대고 입술을 옆으로 길게 하고 작은 바람 소리로 브으으하고 소리를 내면 돼.”

 소리를 한 번에 잘 내는 아이도 있지만 잘 못 내는 아이도 있다. 지금부터는 서로가 선생님이다. 서로 자기가 터득한 방법을 알려준다. 벌써 몇 녀석은 개망초 잎, 동백 잎 등을 뜯어서 불고 있다. 그런데 개망초 잎은 살짝 까슬까슬해서 여린 아이들 입가가 살짝 붉게 변했다. 동백 잎으로 불어본 친구는 소리가 잘 안 나서 포기했다. 풀피리 소리는 잎이 떨리면서 소리가 나는데 두꺼운 잎은 잘 떨리지 않아서 웬만한 고수가 아니면 소리내기가 쉽지 않다.

 ▲숲 속으로

  아이들과 숲 속으로 들어갔다.

  “선생님 오늘은 다람쥐가 안 보여요.”

  “응 어디엔가 있을 거야.”

  “그런데 왜 여기에 쓰레기가 있어요?”

  “사람들이 먹고 버리고 간 것 같은데!.”

  “나쁘다.”

 숲에 들어가니 여기저기 생수병, 비닐 봉투가 널부러져 있었다. 보이는 것 몇 개를 주어서 한쪽에 모았다. 숲에는 놀 것이 참 많다. 굴러다니는 막대기 하나만 있어도 왕이 되고 장군이 되고 산신령이 되고 할아버지가 된다. 위험한 몇 가지만 꼭 일러준다. 긴 옷을 입고 오기 길과 놀이터 밖으로 벗어나지 않기 등. 숲 선생님들이 먼저 오셔서 흰색 밧줄로 달팽이 집이랑 거미집이랑 먼저 만들어 놓으셨다.

  “달팽이 집을 집시다. 어여쁘게 집시다. 점점 크게 점점 작게, 달팽이 집을 집시다. 어여쁘게 집시다.”

 두 편으로 나누어 달팽이 집 맨 안쪽과 바깥쪽에서 서로 노래를 부르면서 뛴다. 둘이 마주치면 가위, 바위, 보를 하고 이기는 친구는 계속 달리고 진 친구는 그 자리에 앉는다. 운이 좋아 계속 가위, 바위, 보에서 이겨서 맨 끝에 다다르면 이기는 놀이다. 평평한 땅에서 놀다가 울퉁불퉁 굴곡이 있는 숲에서 놀면 평소에 쓰지 않던 근육에도 힘이 가고 몸이 훨씬 더 건강해진다. 요즘 숲에 가기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서 잘 쓰지 않는 근육을 쓰게 하는 교육프로그램도 운영된다. 비싼 수강료를 내면서 멋지고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은 별 것 아니다. 숲에서 아이들은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자연스럽게 발산시키면서 건강해 진다.

 ▲신나게 놀고 난 후에

  숲에서 실컷 놀았다. 학교에 와서 밥을 먹고 5교시 국어 시간에 오늘 경험한 일들을 글감으로 시를 쓰게 했다. 아직 2학년이라서 시 쓰기에 좀 어려울 수 있다. 아직 문장을 쓰기 익숙하지 않았다. 한 줄 한 줄 고쳐 써줄까 하다고 아이들 경험과 생각을 꺼내서 한 사람 한 사람 입에서 한 단어 한 단어 한 문장 한 문장 의미를 살려서 직접 말하게 했다. 이렇게 해서 쓴 시가 아래 소개하는 ‘산길을 걸으며’다.
 

  산길을 걸으며
 

  울퉁불퉁 꼬불꼬불
  산길을 걸으면
  산 속 친구들이
  마중 나온다.

  물 소리
  산새 소리
  나뭇잎 소리
  솔솔 바람 소리
  졸졸 시냇물 소리

  뽀롱뽀롱 다람쥐
  깡총깡총 산토끼
  껑충껑충 고라니

  나는 손님
  자연은 주인

  애들아!
  반갑게 맞아줘서 고마워
  착한 손님처럼
  깨끗하게 잘 놀다갈게.

 
 숲 속에서 있었던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 시다. 숲 속 친구들과 잘 놀고 쓰레기도 줍고 착한 손님처럼 깨끗하게 잘 놀다 온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박성욱 구이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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