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볍게 나를 던져 경물과 하나가 되는
가볍게 나를 던져 경물과 하나가 되는
  • 김동수
  • 승인 2017.06.01 15: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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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의 금요 전북문단 / 40. 이재숙(李在淑:1949-)

전북 무주 출생. 전주여자고등학교. 전주교육대학교 졸업. 중등학교 미술교사(1970-1999)를 거쳐1999년 <<전주일보>> 신춘문예와 <<자유문학>> 봄호에 시 <마늘장아찌를 담는 킹목사>외 4편으로 등단, 이후 열린시문학상(2004)과 국제해운문학상(2007) 전주시 예술상(2016)을 수상함. 한국문인협회와 열린시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시집 <<젖은 것들은 향기가 있다>>(2009)를 발간함. 그의 시는 ‘꽃이나 바람의 불면을 엿듣고 베낀 것’(시집 <<젖은 것들은 향기가 있다>> 서문)이라는 시인의 자술처럼 자연 경물에서 생의 비의를 찾아 그것들과 합일의 경지를 이루어 가는 구도자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봄이다. 지천에 깔린 시간들을 헤치고

 회한들이 휘어져 있다

 휘어진 것은 모두 꺾던 때가 있었다

 반성문 쓰듯 일 배 또 일 배

 혼자 쓰는 봄날의 참회록이다

 이제 나의 풍장된 젊음 그 가벼움을

 물에 담근다

 시간은 말라 있고 화석이 된 더듬이들

 슬쩍 이는 속바람 한 줌에도

 아파하며 튕겨 오르던

 뼈만 남은 나의 봄날 한웅쿰을

 물에 담근다.

  -<마른 고사리 물에 담그다>에서

 

  ‘마른 고사리를 물에 담그며’ 지나온 삶을 뒤돌아보며 갖가지 회한에 젖어 있다. 작품 년도로 보아 30년간의 교직을 접고 맞이하는 첫 봄날, 그간의 교직생활을 반성하며 참회하고 있는 모습인 듯하다. 지나고 보니 어느새 ‘말라 있고 화석이 된’ 오늘의 시점에서 이제 ‘뼈만 남은 봄날 한웅큼을 / 물에 담가’ 차분하게 풀어내면서 ‘지천으로 깔린 그날의 시간들을’ 그리워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휘어진 것들을 함부로 꺾어대던’ 젊은 날의 치기 ‘그 가벼움을’ 비유와 상징으로 내면화 시켜 시적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고사리를 꺾는다

 봄의 책갈피를 다 열람하란다.

 허리도 깊게 숙이란다.

 무릎도 접으란다.

 길은 비어 있다./[...]

 산속을 헤매며 한 줌 잠언을 꺾다.

  -<잠언을 꺽다>에서

 

  ‘산속을 헤매며 한 줌 잠언(고사리)을 꺾고’ 있는 모습, 그것은 ‘휘어진 것들을 모두 꺾던’ 지난날들을 뒤로 하고 ‘출구도 모른 채, 차갑고 낯선’(<바닥을 채운 단추>) 멀고도 아득한 산속, ‘비어 있는 길’ 위에서 이제 ‘허리를 깊게 숙이고’ ‘무릎도 접으면서’ 또 하나의 활로를 찾아 나서고 있다.

 

 숨가쁘게 뛰어도 다다를 수 없는 사랑

 이제 단순해지는 아름다움을 익혀야 한다

  [...]

 나는 내 속에서 뛰고

 너는 네 자리에서 흔들린다

 나도 나를 멈출 수 없는 길에서

 버튼 하나면 올스톱되는 가볍고 가벼운 삶

 오늘도 숨가쁘게 뛰고 있다.

  -<러닝머신>에서

 

  ‘뛰고’, ‘흔들리고’, ‘멈출 수 없는 삶의 길에서’ 아무리 ‘숨가쁘게 뛰어도 다다를 수 없는 사랑’ 앞에서, ‘이제 단순해지는 아름다움을 익혀야 한다’고 선언한다. 비록 ‘버튼 하나면 올스톱되는 가볍고 가벼운 삶’이지만 그래도 ‘숨가쁘게 뛰면서’ 멈출 수 없는 삶의 치열성을 토로하고 있다. 산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고사리 소녀가 세상을 돌고 돌아 종심을 앞둔 나이에 러닝머신 앞에서 남은 생을 조율해 가고 있는 모습이다. ‘애욕의 간지럼에 떨었던/ 기억을 모두 버리고’ ‘발가벗은 발바닥’이 되어, 나무가 꽃을 버려 열매를 얻듯, 시인은 돌고 도는 러닝머신 위에서 ‘가볍게/ 가벼웁게/ 나를 던져’(<낙법>) 세상과의 화해를 도모, 대용(大用)의 길을 추구하고 있다.( 김동수: 시인: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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