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디아스포라(고향이야기④)
또 하나의 디아스포라(고향이야기④)
  • 소성모
  • 승인 2017.05.31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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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아스포라(Diaspora)는 그리스 어로 이산(離散)과 파종(播種)의 의미로 민족이나 어떤 집단이 정치·경제적 이유로 원래의 정착지를 떠나서 집단적으로 이주하거나 떠도는 현상을 말한다.

 역사적, 종교적 의미에서 디아스포라가 앗시리안에 의해 이스라엘 왕국이 바빌로니아의 침입으로 유다왕국이 망한 후 유대인들이 그리스, 로마,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를 떠도는 집단적 유랑생활로 정착지에는 유대인 공동체가 나타나기 시작, 이들은 항상 예루살렘을 그리워하면서 원주민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문화적 배타성도 갈등을 많이 일으킨 것은 사실이다.

 이들의 이러한 생활 방식이 예루살렘 탈환을 위해 십자군 운동의 정신적 배경이 되었고, 근대에 와서는 히틀러의 유태인 학살(genocide)이란 비극으로 이어진 것이다. 역사적으로 예루살렘 탈환 시도는 십자군 운동으로 시작되었지만 1차 대전 후 영국외상 벨푸어 선언(1917)과 2차 대전 후 이스라엘 초대수상 벤구리온 선언(1948)으로 그 결말을 맺었다. 그러나 지금도 서구유럽과 미국에 거주하는 디아스포라의 유태인들은 1천만이 넘고 이스라엘 성장과 발전의 실제 버팀목이 되고 있다.

 사실 우리민족의 디아스포라는 삼국시대 백제의 멸망으로 많은 백제 유민들이 왜국으로 이주하고, 고구려 유민은 그 당시 당나라로 이주하면서, 그중 고구려인인 고선지장군은 수십만의 유민으로 구성된 군대를 이끌고 천산산맥을 넘어 오늘날 키르키즈스탄에 있는 탈라스 강변에서 이슬람압바스 군대와 일전을 겨룬다. 이것이 동·서양 문명의 충돌이 시작된 그 유명한 탈라스 강변의 전투(751년)이다.

 그 이후 우리민족의 집단적 이주는 조선말 대흉년이 들면서부터 다시 시작된다. 연해주의 카레이스키(고려인)는 철종 말(1863년) 이주가 시작되어 1880년대까지 러시아인보다 많았다. 사실 일제 강점기에 일본군과 소련 붉은 군대의 결탁으로 연해주 독립군이 집단학살을 겪은 자유시사변(1921년) 이후 카레이스키들은 민족적 고아가 되어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 유랑 민족으로 전락, 스탈린 집권 후에는 수십만이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집단이주를 당하는 정치적 디아스포라를 겪는다. 하지만 지금까지 50만이 넘게 살아남는 끈질긴 생명력을 보여 주었다.

 중국의 조선족은 대흉년(1869년)으로 본격적인 간도 이주가 시작되었고, 그 당시에는 청의 통치권이 간도지방에 적극적으로 미치지 않아 우리정부는 관리인 감계사(勘界使)를 파견하여 이주민을 관리하였다. 1880년대에 와서는 청정부가 조선인의 월경을 엄금하도록 우리 정부에 요구하기도 했으나, 1900년 이후에는 우리정부는 간도관리사를 파견하여 우리영토로 간주하고 우리백성을 보호하였던 것이다.

 그 후 일본은 외교권이 없는 우리정부를 배제하고 청과 간도협약(1905년)을 맺어 간도영유권을 청에 넘기고 그곳의 우리백성들을 정치적 디아스포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 수가 북간도를 포함 만주지역에 100만이 넘었었다.

 다음은 일본인이 조센징(재일조선인)이라고 일컫는 식민지적 디아스포라이다. 재일조선인은 한일강제병합(1910)이후 조금씩 늘었으나, 총독부의 경제수탈도 소작인으로 전락한 빈농들이 1920년 이후 도쿄 인근(가와사키)과 오사카 변두리(츠루바시)에 집단 이주 하면서 재일조선인 디아스포라 지역이 생겨난다. 이 와중에 칸토오 대지진(1923년)으로 가와사키의 재일조선인이 6천명이상이 집단 학살을 당하는 참극을 겪기도 하였다. 그러나 강점기 말엽 징용, 징병이 시작되면서 해방시점(1945.8)에는 재일조선인이 조선전체 인구의 1할인 240만명까지 급속하게 늘어난다.

 재미동포는 미국이민법 개정(1965년)이후 1980년대까지 80만명까지 급속히 증가하게 되어 로스앤젤레스, 뉴욕 등 뒤에 한인 커뮤니티가 생겨나고 최근에는 약 230만명까지 늘어, 소수민족으로서의 파워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근대사에서 우리 민족의 디아스포라는 고려인(재러동포)→조선족(재중동포)→조센징(재일동포)→코리안 아메리칸(재미동포)으로 이어진다. 고대인, 조선인, 재인조선인은 경제적 디아스포라로 시작되어, 조국의 무능으로 정치적 디아스포라를 당했지만, 코리안-아메리칸은 자기들의 경제적 번영을 위해서 개별적으로 움직인 것이 결과적으로 엄청난 디아스포라를 가져온 것이다.

 국내에서는 60-70년대 농촌을 떠나 도시에 정착한 아버지(공돌이), 어머니(공순이)가 고향을 항상 그리워하면서 겪는 향수병이, 명절의 귀성행렬이, 우리의 또 다른 디아스포라인지도 모른다. 따뜻하게 반겨주는 고향은 늙어가고 있지만 향수병이 있는 도시인에게 고향은 그래도 안식처가 된다. 고향이 있어 그리워할 수 있는 행복한 사람에게 축복을 보내면서…….

 소성모<농협은행 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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