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아우르는 소통
세대를 아우르는 소통
  • 강병재
  • 승인 2017.05.28 16: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느덧 사회생활 나이, 서른살이 넘어서니 새로운 계절이 다가옴을 조직의 변화를 통해 실감하게 되는 것이, 천상 월급쟁이구나 싶어 묘한 기분이 느껴진다. 봄은 자연이 맞이하는 새로움의 계절이지만, 조직에 있어서는 변화의 아이콘인 신입사원의 계절이다. 여느 회사가 그렇듯 우리 회사도 봄을 전후하여 날이 선 정장을 차려입고 서툴러서 더 싱그러운 새내기들이 삼삼오오 사무실을 누빈다. 매년 이맘때쯤이면 그 나이 때로 돌아간 것처럼 그들의 설레는 봄에 전염되곤 한다.

 요즘 바늘구멍보다 더 좁다는 취업에 성공한 새내기들을 보면 자식 가진 부모 심정으로 뭔지 모를 대견함에 어깨라도 한번 토닥여주고 싶고, 혹시 모를 어려움은 없을지 주책스런 걱정과 궁금함에 사소한 일로도 자꾸 말을 붙이게 된다.

 근래 간부 워크숍에서 자주 듣는 말이 부하 직원의 사적인 부분에 대해 너무 알려고도 아는 척 하려고도 하지 말라는 충고다. 비슷한 처지끼리 모인 자리라 그런지 자기가 사생활을 간섭하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그걸 왜 곡해하는지 모르겠다는 식의 고충토로가 이어진다. 한참을 주거니 받거니 애환을 나누다 보면 여자들은 왜 그리 모이기만 하면 수다가 구만리냐고 집사람을 투박하던 기억이 떠올라 슬그머니 웃음이 난다. 나이가 들어보니 남자들의 수다도 정말 끝이 없다.

 입사 3~4년차 워커홀릭형 상사와 근무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는 지금 젊은 세대의 말 그대로 “옛날”이었지만, 옛날에도 워커홀릭형 상사는 당연히 빵점짜리 상사였다. 마침 한 부서에 배치받은 입사 동기가 있어 틈만 나면 구석에 숨어서 신나게 상사를 비난했다. 화제에 오르는 것들이 업무방향, 연간 목표설정과 같이 조직에 미치는 영향이 큰 대단한 주제가 아니고 그날 상사가 내뱉은 말이나 잔소리처럼 사소한 것이었지만, 우리는 그때마다 마치 세계평화라도 이룰 것처럼 뒷담화에 열중했다. 김과장은 내가 감기에 걸려 훌쩍거리면 젊은 사람이 툭하면 감기에나 걸린다고 구박한다고, 아픈 사람을 보면 측은지심이 생기는 게 인지상정 아니냐고, 집에 일이 있어 결근이라도 할라치면 무슨 일이냐고 되묻는 게 꼭 내가 핑계 대는 건지 의심하는 것 같아 기분 나쁘다고 투덜대곤 했다.

 이제 내가 그 선배보다 더 오랜 선배가 되어서 걱정을 담아 전한 말이 잔소리로 치부될 때, 진심으로 후배가 나와 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며 조심스레 전한 충고가 부당한 지시라는 이름으로 돌아올 때 적지 않은 상처와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예전에 스쳐 지나간, 보수적이고 고집불통이라 단정지어 버렸던 선배들에 괜스레 미안한 마음에 울컥하기도 하고 억울해지기도 했다. 참, 모두 내 마음 같지가 않더라.

 직장에서는 직원 모두가 한가족이라고 말한다. 어느 회사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는 가족이 아니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땀 흘리며 고단함을 나누는 사이는 맞지만 그래도 우리는 가족이 아니다. 가족보다 더 서로 이해할 때도 있지만, 남보다 못한 사이일 수도 있다. 냉정하게 말해 우리는 이곳을 벗어나면 그냥 타인이다. 선배도 후배도 종종 그 사실을 간과한다. 가족인데 뭐 어때라는 생각이 슬며시 끼어드는 것이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혈연관계인 자식도 10대 이후부턴 나하고 진심으로 대화가 통하는 적이 몇 번이나 있었겠나. 이러니 남의 자식인 후배들에게 무조건 내 말을 믿고 나를 이해해달라는 것은 어쩌면 나만 외우는 공염불이다.

 요즈음 국내의 경영환경이 청년과 장년 사이의 조직내 갈등을 더 부추기는 측면도 있다. 성장 둔화, 고령화로 인한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해지고, 해결책이 장년층의 일자리 나눔 등으로 집중되다 보니 명예로운 퇴직을 앞두고 제2의 인생을 꿈꾸어야 할 장년층은 어딘가로 내몰리는 기분이 들고, 청년층은 이 모든 게 장년층 탓인 것만 같아 마냥 원망스럽고, 덧붙여 세대 차이로 인한 각자의 인생관, 문화는 결코 공존할 수가 없을 지경이다.

 근자에 아름다운 조직문화가 경영성과의 당연요소로 인식되면서 K-water도 내재하여 온 갈등구조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많은 고민과 시행착오를 겪었다. 해답은 결국 당사자인 신구세대에 있었다. 선배는 본인이 조직생활의 에센스를 후배에게 전파하여 후배를 양성하여 조직의 활력을 되살리고 후배는 그러한 선배의 노하우를 통해 시행착오 없이 한단계 성장할 수 있는 멘토링이 바로 그것이다.

 선배는 더 일하고 싶다. 체력도 능력도 아직 쓸만한데 멋지게 소진하고 보람있는 제2의 인생을 열고 싶다. 후배는 궁금하다. 대체 어떻게 해야 이 산더미 같은 일을 처리할 수 있는지 묻고만 싶은데 주변 동료들은 너무나 바쁘다. 그와 그녀가 만나서 고민은 나누고 업무성과는 배가 되게 만드는 것이 K-water가 바라는 직무 맞춤형 멘토링의 목표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서로서로 입장을 이해하고 나의 과거가 너였음을, 너의 미래가 나임을 확인해 나가는 것이 멘토링의 진정한 가치이다. 나는 가능하다면, 어느 선배님이 그리하셨듯 기꺼이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후배의 허물이 되어주는 이름없는 선배로 남고 싶다.

 한 기업에서 30년을 지나 후배와 선배라는 자리를 모두 겪어 보니 배려라는 용어가 새롭게 와 닿는다. 공자님은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행하지 말라” 라는 말을 남기셨다고 한다. 백번 지당하신 말씀이다. 우리 모두는 타인이지만 조직의 목표를 공유하는 동료이다. 선배이기 때문에 후배를 마땅히 배려해야 한다거나, 후배라서 당연히 배려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한 사람의 인격체로서 서로 이해하고 사회적으로 가지는 입장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으로 동시대를 일구어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강병재 K-water 전북본부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