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혼(卒婚)이 뭔가요?
졸혼(卒婚)이 뭔가요?
  • 김병수
  • 승인 2017.05.22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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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수 박사의 건강한 가정 만들기 프로젝트 ‘함께 답하는 가족이야기’ <4>

 “서로의 잔을 채워주되 한쪽의 잔만을 마시지 말라. 서로의 빵을 주되 한쪽의 빵만을 먹지 말라”「결혼에 대하여. 칼릴지브란」
 

 얼마 전 결혼생활 50년 넘으신 노(老) 할아버지께서 자신의 아내가 졸혼을 선언하셨다면서 걱정이 태산 같다고 하셨다. 할머니의 연세도 80세가 넘으셨고, 관절염과 노환으로 건강하신 몸은 아니셨음에도 불구하고 할아버지의 식사, 빨래, 집안 청소 등을 계속 해왔기 때문에 할머니의 졸혼 선언도 충분히 이해가 됐다. 90년대 초 “벗어나고 싶어, 이제는 벗어나고 싶어. 벗어나고 파~ 그대에게서 벗어나고 파~”라는 가사가 인상적이었던 노래가 생각났다.

 언젠가부터 우리사회에서 졸혼(卒婚)이라는 용어가 중년이상의 부부들 사이에 등장하고 있다. 일흔이 넘은 남자 연예인이 TV에서 독립적인 그의 졸혼 생활모습을 보여주고도 있다. 그러나 엄격히 이 연예인의 경우는 졸혼이라기 보다 별거라고 볼 수 있다.

 졸혼을 생각하는 중년 부부가 늘고 있다. 졸혼은 일본어로는 소츠콘(卒婚:そつこん)인데 일본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2004년에 쓴 《졸혼을 권함》이라는 책에서 처음 언급되었다. 한자로 보아서는 결혼을 졸업한다는 뜻으로 불화 끝에 헤어지는 이혼이라는 말과는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정기적으로 만남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별거와도 차이가 있다. 졸혼은 혼인관계는 계속 유지하면서, 서로 각자 자신의 인생을 즐기며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것이다. 물론 경제적 협력은 공유한다. 따라서 생활비가 더블로 들어간다는 단점이 있다. 아무튼 졸혼을 원한다는 것은 어느 누군가에게는 결혼생활이 졸혼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고 부담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배우자, 그리고 자신의 역할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노 할머니의 경우 자신의 인생을 찾고 즐기고 싶어서가 아닌 가사노동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돌봄이 필요하신 할머니께서 할아버지 부양의 짐으로 부터 벗어나고 싶어서 하신 통보였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내가 다른 쪽 배우자에게 귀찮은 존재가 되었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답답해진다.

 현대사회는 많이 변했다. 구조적으로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었고, 평균수명이 길어지면서 결혼기간이 점점 길어져가고 있다. 저출산과 만혼 현상이 가속화되고 생계부양자로서의 남성가장의 역할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지금의 중년이상 남성들은 전통적인 가부장적 성역할에 의해 도구적인 역할 즉, 가장으로서 돈 버는 역할이 주된 것이고, 자신의 삶보다 직장에서의 삶이 나의 삶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다. 다행히(?) 정년퇴직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통해 자의적이든 타의적이든 그 역할에 대해 졸업할 수 있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가사노동과 자녀양육의 주된 책임을 줄곧 맡아 왔던 여성, 아내들은 자신의 육체가 힘닿는 한 졸업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자녀양육에서 벗어날 때쯤엔 손자녀 양육문제까지 책임져 오면서 졸혼을 요구하는 여성이 증가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가치관은 변화하고 있다. 결혼과 배우자에 대한 가치관도 물론이다. 딩크족(맞벌이를 하면서 자발적으로 무자녀를 원하는 가족형태), 혼밥족(혼자서 식사를 해결하는 싱글가족형태), 분거가족(직장이나 교육, 생활습관 등의 차이로 각자 떨어져서 생활하는 가족형태로 예를 들어 남편은 전원생활을 하고 아내는 도시생활을 하는 유형), 동거가족(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면서 사는 부부 형태)과 같은 선택가능한 가족의 형태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동안의 일상이 되어버린 삶과는 다른 새로운 나만의 삶의 스타일로 나의 인생을 살고 싶어 한다. 자유롭고 싶고, 자신을 찾고 싶어 하는 것이 졸혼의 가장 큰 이유가 된다.

 졸혼이 유행하는 것을 보면서 왜? 결혼생활이 졸업해야 하는 하나의 과정이 되고 있는지 안타깝다. 앞으로 우리들의 결혼생활은 개인(남자든, 여자든)의 희생을 통해 가족의 만족을 추구하지 않길 희망한다. 개인의 가치추구와 만족을 통해서 함께 사는 가족의 행복이 달성되길 희망한다. 배우자는 가정 내 역할을 함께 공유하고 서로가 얽매인 관계보다 자율성을 존중하는 관계로 부부관계를 지속해 나가야 할 것이다. 결혼한다는 것이 배우자라는 ‘내편’을 얻는 것, 결혼생활은 진정한 지지와 관심 속에서 생활해 나가는 과정이 되길 희망한다.

 개인적으로는 결혼생활 처음부터 부부가 서로 독립되고 자율적인 ‘졸혼’의 삶을 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든다. 함께 하되 희생적이지 않고 독립적인 ‘졸혼’생활처럼. 그러면 먼 훗날 내가, 혹은 나의 배우자가 서로의 존재로 인해 얽매이고, 힘들어 하는 일은 없을 듯 싶다.

 / 글 = 김병수 가족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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