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를 대하는 방식
약자를 대하는 방식
  • 장상록
  • 승인 2017.05.22 14: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내가 가고자 했던 길과 연관이 없다고 생각해서 고사했던 그 자리에 다시 연락이 온 것은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 의결된 바로 그 해였다. 새롭게 도전하고자했던 그 길은 내 삶의 다른 부분에서 늘 그랬던 것처럼 계획대로만 되진 않았다. 그럼에도 국회에서의 짧은 인턴생활은 내게 많은 생각을 던져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 중 한 장면이다.

  당시 민주당 정책위의장이던 장성원 의원을 모시고 당정협의회가 열리는 자리에 배석했을 때다. 총리를 비롯한 각부 장관과 정당 주요대표들이 함께한 자리에서 장성원 의원은 듣는 입장에 따라서는 충분히 불편할 발언들을 쏟아냈다. 물론 그것은 장성원 의원 개인의 목소리가 아닌 국민을 대표한 정당의 입장발표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 하나는, 내가 국회에서 지켜본 장성원 의원은 그 어떤 권력자에게도 머리를 숙이는 발언이나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단 한 번을 제외하고는.

  하루는 지역구에서 촌로가 한 분 국회를 방문하셨다. 국회 견학안내를 마치고 장성원 의원 지시에 따라 나는 그 분을 모시고 두 분이 점심식사 하는 자리에 배석했다. 그런데 그 자리는 단순한 식사자리로 끝나지 않았다. 촌로의 입에서 지역구의 여러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다지 편하지 않고 듣기에 따라서는 훈계조의 그 말들에 대해 장성원 의원은 그 어떤 불쾌함도 표시하지 않았고 반박도 하지 않았다. 내가 듣기에는 촌로의 말씀이 때로 주제 넘는 발언으로도 생각되고 어떤 사안은 충분히 반박할 수 도 있는 얘기들이었지만 장성원 의원은 경청만 할 뿐이었다. 아울러 그분께 머리를 숙이셨다. 나는 지금도 그 때 그 분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날 그 자리는 지역구민 한 분이 서울에 왔다가 지역구 국회의원 면담 신청을 했고 마침 선약이 없던 국회의원이 지역구민에게 점심식사를 대접한 자리일 뿐이었다.

  장성원 의원이 촌로에게 그런 얘길 듣고 있었던 이유는 오직 하나다. 그분이 국민, 바로 자신의 지역구민이란 사실. 나는 그 곳에서 한 가지를 배웠다. ‘아, 정치란 이런 것이구나.’ 동료 정치인이나 장관에겐 매서운 감시자이면서 지역구민에겐 한없이 낮은 존재임을 자처하는, 그것이 바로 정치의 요체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굳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다.’ 그리고 정치는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가치를 권위적으로 배분하는 과정’이다.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과 같은 가치의 배분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는 체제의 안정과 지속에 필수적이다. 그 과정에서 정치인이 등장하는 것은 배분하는 과정에 필요한 ‘권위의 설정’ 때문이다. 누구나 권위를 사용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무정부상태를 의미할 뿐이다. 역설적이지만 그것은 때로 정치가 혐오와 조롱의 대상이 되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후루시초프의 말처럼 정치인은 때로 ‘강이 없어도 다리를 놓겠다고 공약하는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알베르 까뮈는 정치인을 이렇게 혹평하고 있다. “정치와 인간의 운명은 이상도 없고 위대함도 없는 자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자기 자신 속에 위대함을 지닌 자들은 정치를 하지 않는다.” 나는 까뮈의 말을 이해하지만 동의하진 않는다.

 정치에 필요한 것이야말로 위대함이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지만 적어도 지향성까지 부정할 순 없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지향점이자 존재이유다. 그것은 정치인의 존재방식에 대한 준엄한 명령인 동시에 개별 국민의 도덕적 의무를 명시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배려는 물론 동물복지 까지도 민주공화국의 공민이라면 마땅히 수행해야할 바다. 우리는 과연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한없이 약한가. 누가 내게 자신의 힘을 과시한다. 내가 두려운 것은 그의 힘이 아니고 내가 과연 ‘약자에게 약한 존재’인가에 대한 성찰이다. 약자를 대하는 방식이 개인은 물론 그 사회의 품격이기에.

 장상록<예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