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고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구원의 세계
흔들리고 흔들리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구원의 세계
  • 김동수
  • 승인 2017.05.18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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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의 금요 전북문단 / 38.조경옥(曹景玉:1958-)

전북 장수 출생. 한국방송통신대학 졸업. 1997년 <<시와 산문>>에 시 <찔레꽃>이 당선되어 등단함. 한국문인협회, 한국녹색시인협회, 카톨릭 전북문우회 회원으로 활동, 시집 <<그곳이 비어 있다>>(2000), <<말랑말랑한 열쇠>>(2009), <<가벼운 착각>>(2013)을 발간하면서 한국녹색시인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시는 아름답고 순결에 대한 그리움을 다양한 이미지와 상상력으로 그리는가 하면, 보이지 않는 사물의 이면까지고 꿰뚫어 존재의 근원을 직관하는 형이상학적 통찰로 내재적 본질의 세계를 탐구해 가고 있다.

 

 잃어버린 너를

 저 초승달처럼

 되돌릴 수 있을까

 

 그날 밤처럼

 신월이 뜨는데

 혼자서 하늘을 본다

 마주한 별빛도

 뿌연 안개빛이다

 흔들리는 물빛이다

 

 너 아직도 그대로인데

 초승달이 휘청거린다.

  -<잃어버린 너>에서, 2000

 

 ‘너’에 대한 그리움으로 밖으로 나와 달을 보지만 ‘마주한 별빛도’ ‘뿌연 안개빛’으로 ‘흔들려’ ‘휘청거린다’고 한다. 네가 흔들리고 흐릿하니, 나도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해 흔들리고 있는 화자의 심상을 흐릿한 ‘초승달’과 ‘안개’ 그리고 ‘흔들리는 물빛’ 등의 은유로 시적 완성도를 높이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누군가의 가슴 속에 살아 있기를 바란다.

 

 찔래 하얀 꽃잎이 가슴 텅 비게 할 줄 그때는 몰랐다. 이만큼 살고서야 지워야 할 이름이 있다는 것, 흔적 없이 사라져 가는 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 그곳이 비어 있다>에서,2000

 

  ‘흔적 없이 사라져 가는’ 그리하여 그곳이 ‘비어’ 또 하나의 내가 존재하지 않는 ‘텅 빈 허기’ 곧 자아와 세계와의 불일치에서 그의 시는 비롯되고 있다.

 

 공허함을 먹고 자라던 벽은

 문 하나 만들고

 단절의 자물쇠를 채웁니다.

 

 혼자만의 공간에 풍덩 빠지기 전에

 소통을 위한 열쇠를

 어떠한 문이라도 열 수 있는

 말랑말랑한 열쇠

  -<말랑말랑한 열쇠>에서, 2009

 

  급기야 그 ‘공허’가 ‘벽’이 되어 ‘너’와 ‘나’ 사이에 ‘단절의 자물쇠를 채우’고 있다. 쇠덩어리처럼 딱딱하고 차가운 부재와 단절의 현장에서 그는 시방 ‘어떠한 문이라도 열 수 있는 / 말랑말랑한 열쇠’ 하나를 애써 찾고 있다. 그러나 ‘ 바람이 끊이지 않는 /해망동 한 끝에서/ 나를 보듯/ 조금씩 커가는 섬과 마주하’게 된다.(<<말랑말랑한 열쇠>> 自序) 이 ‘섬’ 또한 세상과의 단절과 소외에 다름 아닌 객관적 상관물이다.

 

 가을이 가만히 있지 못하는 것은

 끊임없이 흔들리는 코스모스 때문인지 모른다.

  - <코스모스 길>에서, 2009

 

  그의 절대 영지를 아직 만나지 못해 흔들리고 있는 화자의 잠재적 내면이 투사된 주관적 논리의 세계다. ‘거듭된 퇴고로 피말린 문장’(<단풍>)도 이와 다르지 않는 세계다. 그러다 최근 그는 또 하나의 길을 찾아 ‘작은 것들에게 위로를 받으며 ∽ 의외로 작은 것들은 의연하다’(<<가벼운 착각>> 自序, 2013)며, 작은 것을 통해 또 다른 봄날 ‘꽃이 나비가 되는’ 대이화지의 길을 모색해 가고 있다. (김동수: 시인, 백제예술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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