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조 교수의 명심보감으로 배우는 리더십
김병조 교수의 명심보감으로 배우는 리더십
  • 이종호 기자
  • 승인 2017.05.12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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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도민일보 비전창조아카데미
▲ 11일 저녁 7시 전북도민일보 6층 대강당에서 김병조 조선대 교수가 ‘명심보감에서 배우는 리더십’이라는 주제로 비전창조 아카데미 특강을 하고 있다. 신상기 기자

 배추머리 김병조 교수가 오천만 국민의 훈장님이 되어 인성교육을 외쳤다.

1980년대, 지금의 유재석을 능가하는 국민 MC 겸 인기 개그맨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았던 배추머리 김병조가 이제는 〈명심보감〉을 강의하며 대중으로부터 또 다른 사랑을 받고 있다.

조선대학교에서 한문과 인성교육을 가르치며 교수로 변신한 그는 11일 전북도민일보 CVO강사로 나서 유·불·선 핵심 가치를 포괄하고 있는 청주판 명심보감 완역을 통해 새로운 삶의 이정표를 제시했다.

김교수는 將方上不足 比下者有餘(장방상부족 비하자유여)라는 명심보감의 명언을 인용해 행복은 위보다는 아래에 있다며 현재의 삶에 만족할 것을 강조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김교수는 우리가 죽을 때 지방에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라고 쓰는 이유는 죽을 때 까지 항상 배워야 한다는 의미가 있다며 물어보고 배우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명심보감은 원본이 아닌 번역본인데 원본인 청주판 명심보감 완역으로 화제가 된 그는 모든 괴로움은 만족하고 멈추지 못한 데서 오는 것. 그는 만족하고 멈추라고 한다. 그것이 행복의 지름길이고. 그를 통해 시대를 가로질러 우리에게 전해진 문장과 그의 혜안이 담긴 충고를 응시하다 보면 삶에서 느끼는 좌절과 불안, 어려움이 해소되는 느낌이다.

더불어 위선(爲善:선을 행함)과 방편(方便:자신의 이익을 돌보지 않고 타인을 위해 선행을 함), 물처럼 순연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상선약수(上善若水)의 고언은 우리 시대에 꼭 필요한 충언이 아닐 수 없다.

물질 만능의 무한 경쟁 시대에 따른 적폐(積弊)를 해소하기 위한 국가 대혁신이 필요한 지금, 기본으로 돌아가자 부르짖는 이때, 배추머리 김병조 교수가 도덕재무장을 부르짖으며 대한민국 국민 훈장님을 자임하고 나섰다.

사람 팔자 아무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사별삼일(士別三日)이면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말도 있다. 선비는 헤어진 지 삼 일만 지나도 눈을 비비고 봐야 할 정도로 달라져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누가 됐든 상대를 무시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 사람을 언제 어느 때 어떤 자리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다시 볼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금은 조선대학교 평생교육원 명예원장과 초빙교수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80년대 연예계의 최정상 개그맨이자 방송인이었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스타였다. ‘지구를 떠나거라’ ‘나가 놀아라’ ‘인간이 되어라’라는 유행어를 히트시켜 당시를 함께했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울고 웃으며 고단했던 시대의 아픔을 달래곤 했던 기억이 날 것이다. TV만 틀면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던 시절, 워낙 유명하다 보니 정치권 행사에도 곧잘 불려가 사회를 보곤 했다

87년 6.29선언의 단초가 됐던 여당 전당 대회장에서 상대 당에 대한 비하멘트를 날려 커다란 파문을 일으킨다. 주최 측에서 준 원고를 받아들곤 몹시 난감해하는 그에게, 당시 여당 실세의 ‘그 멘트를 안 하면 알아서 하라.’는 엄포에 뉘 있어 거절할 수 있었겠는가.

이 대목을 얘기하며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은 각오로 거절하지 못한 것이 천추의 한이 됐다며 다시는 이 땅에 본인같이 불행한 연예인이 나와서는 안 된다며 역사의 죄인이라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 자괴했다.

그는 당시 국민적 파동과 그러한 멘트를 거부하지 못한 데 대한 자괴감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결국, 그 스트레스는 눈에 장애를 가져오고야 만다. 이중 삼중으로 압박해 오는 충격에 그만 혈압이 치솟았고, 그로 인해 한쪽 눈이 터져 실명까지 하게 된 것이다. 말 한마디 때문에 최정상 스타에서 끝 간 데 없는 나락으로 떨어져 버린 순간이었다.

예부터 전해 오는 ‘입은 화의 근원이요,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라는 말을 너무도 무겁게 온몸으로 받아들인 그의 참담했던 심정을 더듬어 보자면 암울했던 한국 현대사와 마주하게 된다. 노랫가락 하나 마음대로 못 쓰고, 코미디 소재 하나 제대로 차용하지 못했던 엄혹했던 시절, 우리는 표현의 자유를 잃고 살았다. 그러한 시대적 아픔을 뒤로한 채 그는 결국 방송계에서 점차 멀어졌고, 허망함과 절망감 위에 또 다른 삶의 원형을 구축하기 시작한다.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영원하다는 진리의 끝자락을 잡고 몰두하기 시작한 것이 동양 인문학의 정수인 《명심보감》이었다.

일찍이 장성의 한학자셨던 선친으로부터 한학(漢學)을 사사했던 연유도 있겠지만, 어릴 적부터 신동으로 이름을 날렸을 만큼 우수한 두뇌의 소유자인 그는 명심보감에 등장하는 공자, 노자, 장자 등 40여 명의 대가들이 남긴 원전(原典), 즉 사서오경(四書五經), 설원(說苑), 소서(素書), 익지서(益智書), 포박자(抱朴子), 한서(漢書) 등과 공자가어(孔子家語), 안씨가훈(顔氏家訓)을 위시한 가문의 글, 거기다 현제수훈(玄帝垂訓), 동악성제수훈(東岳聖帝垂訓)은 물론이거니와 황제가 직접 지은 어제(御製)와 구래공육회명(寇萊公六悔銘), 격양시(擊壤詩), 자허원군성유심문(紫虛元君誠諭心文), 풍간(諷諫)등 명(銘)·시(詩)·문(文)·간(諫)에 이르는 방대한 자료를 20여 년에 걸쳐 섭렵한다.

그 결과, 일곱 권에 달하는 두꺼운 대학 노트에 자필로 써 내려간 “청주판 명심보감 완역”이라는 대역사는 어쩌면 정해진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김병조 교수는 20여 년간 강의해 오며 당시 청주에서 급하게 작업을 하느라 오각(誤刻)한 부분과 초략되고 편집되면서 문장의 순서가 바뀌고 뜻이 순연치 못하게 된 부분을 과감히 바로잡았다.

김병조 교수가 새롭게 펴내는 ‘청주판 명심보감 완역본’ 《김병조의 마음공부》에는 명심보감의 기준을 바로 세우는 특별한 의미가 깃들어 있다.

김교수는 “우리는 대부분 4계절 가운데 봄과 가을을 좋아하지만 봄이 지나면 무더운 여름이 기다리고 있고 가을다음에는 혹독한 겨울이 온다”며 “여름과 겨울을 이겨내며 다가오는 내일의 봄과 가을을 기다리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말로 이날 강의를 끝맺었다.
 

 ◆김병조 교수 약력
 김병조 (金炳朝) 호: 응봉 (鷹峰)
 방송인 겸 한학자. 조선대학교 평생교육원 명예원장 (現)

 학력
 1968 광주고 졸
 1972 중앙대 예술대 연극영화학과 졸

 방송경력
 1975 동양방송(TBC) ‘살짜기 웃어예’ 로 개그맨 데뷔
 문화방송(MBC) ‘일요일 밤의 대행진’ 앵커. ‘뽀뽀뽀’, ‘우리가락 한마당’외 수십 편 출연 및 진행
 서울방송(SBS) ‘코메디 전망대’ 외 십 수편 출연 및 진행
 불교방송(BBS) ‘김병조의 이야기쇼’ 외 다수 진행

 강의경력
 조선대학교 초빙교수
 조선대학교 교육대학원 초빙교수
 일반시민, 지역 및 중앙부처 공무원, 기업체, CEO 등 대상 수 천회 특강

 수상경력
 문화방송(MBC) 최우수 연기상
 프로듀서 연합회 선정 최우수 진행자상
 연예인 최초 저축유공 국무총리 표창
 방송유공 국무총리 표창
 행원문화상 외 다수

 저서
 청주판(版) 명심보감 완역본 「김병조의 마음공부 상(上), 하(下)」
 수필집 「종가집 배추」

이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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