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평론 요구
탕평론 요구
  • 임보경
  • 승인 2017.05.11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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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의 고전 서경에 의하면 탕평(蕩平)이란 말이 나온다. 탕평이란 군주의 정치행위가 공정하고 정당함을 말하는 것으로. 이는 시비판단의 기준이 군주에게 있음을 뜻한다. 고로 군주의 판단력과 분별력이 깊게 요하는 문제라 무거운 부담감을 안고서 시비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 2017년 5월 9일 대한민국은 박근혜정부의 유종의 미를 보지 못한 채 총리가 국가를 대행하는 상황 속에서 대선을 치렀다. 하늘도 아는지 그 전날까지 대한민국을 온통 혼미하게 덮어버렸던 미세먼지가 빗물에 씻기어 내려갔다. 그리고 제19대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국가의 상황이 상황인지라 호화로운 축하도 기쁨도 맘껏 누리기가 불편한 채 국민들 앞에 바닥이 된 이 나라의 경제와 외세의 무한정 공격과 불편함 앞에 그리고 상처받은 국민들의 마음을 어떻게 어떤 노력으로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강구책과 다당의 분쟁과 권력 다툼 야소여대의 반전앞에 통합이라는 대안으로 취임사를 해야만 했던 대통령의 모습을 매체를 통해서 국민들은 보았을 것이다. 대통령의 모습 속에서 그가 앞으로 이겨내야 할 고통과 답답함 그리고 실타래처럼 얽혀진 정치굴레와 난관들을 조목조목 가슴에 와 닿은 연설 속에 고개도 끄덕여지면서 앞으로의 이 나라의 미래에 믿음이 가는 한편 안쓰러움까지 느꼈다.

 대통령이 말하는 통합이란 모든 것에 대한 통합으로 해석된다. 가치통합, 여야통합으로 인한 인사정책, 외세와의 통합 그리고 국민통합으로 그는 섬김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무엇보다도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국민의 눈높이에 임하겠다는 애민정신을 보였다. 그리고 빈손으로 임기에 임해서 빈손으로 퇴직하겠다는 청렴도와 공정성을 내보였다.

 제19대 대통령의 탕평논리는 이렇게 시작됨을 일컬어진 것으로 해석해본다. 조선시대의 붕당정치는 여야의 갈등과 공존이었다. 국가의 정부는 한쪽으로만 절대 치우침을 고집해서는 아니된다. 우리가 잘 아는 세종께서도 수많은 업적을 내보이셨지만, 그 분 옆에는 항상 브레이크 역할을 했던 황희정승이 계셨다. 세종대왕과 황희정승은 정말 통합될 수 없던 인물이었다. 세종의 맏형이었던 양녕대군이 세자책봉이 되어 10여 년간 세자교육을 받던 중에 태종 이방원의 눈 밖에 나게 되자 충녕대군이 세자로 바뀜에 목숨을 다하여 충녕대군(세종)이 즉위하는 것을 말렸던 황희정승! 정말 세종과 황희정승은 서로서로 수용하기 힘든 관계 속에서 세종은 황희를 자신의 신하로 등용한다. 인간의 마음 같아서는 정말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나이 든 노인네에 불과했을 것이다. 하지만, 세종의 인재등용에선 여야를 가리지 않았고 가치관이나 논리가 달라도 그의 능력과 비전을 보고서 챙겼던 것이야말로 현대판 탕평논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황희정승은 세종에게 충성하며 이 나라 백성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자 항상 똑똑한 왕의 행보에 브레이크 역할을 하면서 더 좋은 제도가 탄생하는데 온 정성을 다하게 된 것이다.

 고대에 말하는 탕평논리가 시대가 바뀌었다 해도 그 기본 이념은 똑같다고 본다. 더 나은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상대당의 의견도 참조하여 수용하여 정책에 반영함이라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왕조시대와 마찬가지로 그 기본원리는 존재하리라 본다. 이러한 공론을 존중하는 정치가 붕당정치이다. 역사 속에서 탕평론의 등장은 조선시대 숙종 때부터이다. 숙종의 카리스마로 왕권강화 차원에서 붕당의 의미가 변질하여 일당전제화로 되면서 붕당의 공론은 깨지고 배제되어야만 했던 숙종의 환국시대는 탕평책을 불러들이게 된다. 영조와 정조의 탕평책은 나름대로 각자 다른 모습으로 펼쳐나가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고른 인사정책이었다. 그래서 여러 가지의 색깔과 음식을 반듯하게 다듬어 놓은 탕평채라는 음식을 먹게 하였고 성균관 앞에 탕평비를 세워 두어 인식변화를 관료들에게 심어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영정조의 탕평책은 기존 보수파의 세력을 해결하지 못한 채 성공하지는 못하게 된다.

 제19대 정부의 탕평책은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대책을 내세웠다. 통합된 국가로 나라다운 나라로 서게 하는 방법은 탕평론이라 본다. 세종대왕의 인재 탕평론이 현 정부의 탕평론과 흡사한 출발의 이미지를 보인다 하니 우리는 잠깐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세종의 탕평론은 한 대적도 필요하다 하면 기꺼이 대화와 설득으로 수용하여 적재적소의 관직에 임하게 하여 나라와 백성을 위한 대책과 제시를 실천하게 하였다는 점이다. 그래서 조선의 신분사회에서 가장 소외받던 하층민에게까지 백성으로 사랑하며 법의 보호를 받게 하였던 것이야말로 통합의 탕평론이라 볼 수 있다. 물론 그 선두에 서는 탕평론의 인사정책에선 무조건적인 탕평책이 아닌 타당한 논리와 국가를 위한 정책과 비전을 제시하는 자에 한해서 탕평의 논리도 적 됨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제 죽도록 바란다. 제19대 대통령의 일당적인 질주가 아닌 공정하고 정당함을 가진 통치자로서 시비판단 기준점의 탕평의 통치자로서 우리 국민과 나라의 미래에 매진해줄 것을 아울러 세계의 평화에 노력해 줄 것을 당부하고 싶다.

 임보경<역사문화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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