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꽃 보다 예쁘다.
사람이 꽃 보다 예쁘다.
  • 박성욱
  • 승인 2017.05.1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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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들아 꽃 따라 가자!

  꽃피는 봄이다. 학교 운동장에 연분홍 벚 꽃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꽃비를 뿌리고 있다. 아이들은 꽃비를 맞으며 조그만 한 손바닥으로 벚 꽃잎을 잡고 있다. 하늘을 잡을 듯 뛰기도 하고 쏜살 같이 달리기도 한다.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도 예쁘지만 아이들은 더 예쁘다. 바람 따라 꽃잎이 학교 담장을 넘는다. 담장 너머에 매실나무 새하얀 매화꽃잎도 흩날리고 있었다. 흩날리는 매화꽃잎을 따라 시선을 돌리니 앞산에 분홍빛 진달래가 지천이다. 내가 놀던 동네 뒷산에도 진달래가 참 많았다. 진달래꽃은 먹을 수 있다. 친구들이랑 산에 놀러 갈 때랑 할머니랑 고사리를 꺾으러 갈 때랑 한 움큼씩 따 먹었다. 입으로 먹는 맛보다는 눈으로 먹는 맛이 더 좋다고나 할까? 예쁜 꽃을 따 먹는 것은 색다른 기분에 왠지 묘한 이끌림이 있다. 해마다 4월 초순이 되면 이곳 모악산에서 진달래 화전축제가 열린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보고, 느끼고, 먹고 즐긴다. 축제를 교실 속으로 학교 속으로 가져와도 좋지 않을까? 그리고 아이들에게 말했다.

  “애들아! 우리 꽃 따라 가자!”

  “진달래, 벚꽃, 매화꽃 따다가 화전 만들어 먹자!”

  “참 코가 아픈 영후를 위해 코에 좋은 산 목련도 따자!”
 

 아이들에게 공부란?

  초등학교 1,2학년 구성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바른생활, 슬기로운 생활, 즐거운 생활로 각 각 나누어졌던 통합교과가 봄, 여름, 가을, 겨울 각 계절에 맞게 재구성되었다. 계절에 따라 자연과 사람들의 삶이 변화되듯이 배움도 여기에 맞게 따라 가야 한다. 자연과 사람들의 삶을 배우는 것은 몸으로 겪고 머리로 생각하고 마음으로 느끼는 과정의 연속이다. 그런데 많은 교실에서는 책상에 앉아서 머리로 공부한다. 아쉬운 부분이 참 많다. 사실 밖으로 나가서 공부한다는 것은 선생님들에게 용기가 필요하다. 자연은 신비롭지만 위험한 부분도 많기 때문이다. 숲 속으로 들어가면 먼저 터를 잡고 살아가는 녀석들이 많다. 다람쥐, 토끼 귀여운 녀석들도 있지만 멧돼지, 뱀 무서운 녀석들도 있다. 철쭉, 진달래 예뻐서 다가서고 싶은 녀석들도 있지만 가시덤불, 땅벌 피하고 싶은 녀석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자연의 일부이듯 이들과 어울려서 살아야 한다. 진짜 위험한 것은 자연과 어울리지 못하고 피하거나 망치는 것이다. 때로는 그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고 배려해 주어야 한다. 사람 사이 관계도 서로 만나면서 인정해주고 배려하면서 친해지고 어울리는 것이다. 때론 엄마들은 이 아이는 이 부분이 나빠서 놀지마라. 저 아이는 저 부분이 나빠서 놀지말라고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담쌓기를 하면 결국 아이는 외로워진다. 역설적이게도 진짜 위험한 사람들은 지나치게 안전을 강조하는 사람들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위험한 것을 피하고 극복하는 방법을 함께 가르쳐야 한다.

 
  접시에 그린 자연 그림

  용기를 내서 숲으로 갔다. 바싹 바싹 마른 청미래 넝쿨 가시랑 밤 송이 가시를 피해서 진달래 한 송이 한 송이 따서 바구니에 담았다. 좀 높은 곳에 있는 산 목련은 아이들이 올라가기 위험해서 내가 나무 타고 올라가서 큼지막하게 몇 송이 땄다. 내려오면서 학교 텃밭에 매화꽃이랑 운동장에 벚꽃은 아이들을 안아 번쩍 들어 올려서 땄다.

  바구니 가득 담긴 꽃들을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어서 암술과 수술을 제거 했다. 각 자 아이들마다 접시 하나씩을 나누어 주었다. 윤서할머니가 보내주신 반죽을 조금씩 떼어내어 동글동글 경단을 만들어서 손바닥 위에 놓고 살짝 눌러 아이들 손바닥 보다 조금 작게 펼쳤다. 접시 위에 올려놓고 쑥, 대추, 잣, 꽃잎을 놓아 그림을 그렸다. 윤서는 크고 긴 목련꽃 잎으로 토끼 귀를 만들고 작게 자른 대추로 눈, 코, 잎을 만들었다. 참 귀여운 토끼였다. 기름을 살짝 두른 프라이팬 위에 올려놓자 찹쌀반죽이 반투명한 색으로 변하면서 익었다. 꽃잎 색이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 살짝 익혀서 예쁜 접시 위에 올려 놓았다.

  “와!”

 아이들은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은 화전에 감탄했다. 따끈따끈한 화전 위에 집에서 가져온 꿀을 조금씩 바랐다.

  “선생님, 꿀 꿀 맛이예요. 정말 맛있어요.”

 아주 아주 맛있을 때 사람들은 꿀맛이라고 한다. 맛있는 화전에 맛있는 꿀을 더했으니 꿀꿀맛이 맞다.

 
  나누면 행복해요.

  학교 뒷산으로 올라가는 길에 나만 알고 있는 쑥밭이 있다. 쑥을 캐는 정도가 아니라 베어낸다는 표현이 알맞은 정도로 쑥이 많다. 아이들과 한 시간만 캤는데도 양이 솔찬했다. 이 쑥을 어떻게 할까 고민 고민 하다가 여러 사람들의 조언을 들었다. 쑥 개떡을 하기에는 양이 조금 부족한 것 같기도 하고 쑥을 삶는 것도 내게는 쉬운 일도 아니었다. 다행히 도와주시는 분이 계셨다. 영후 할머니셨다. 평소 영후와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서 참 지혜로우시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이 직접 캔 쑥에 할머니 사랑의 손길이 더해졌다. 500g 씩 쌀을 가져오라고 했는데 5kg 쌀자루를 가져온 친구도 있었다. 못 가져온 친구들을 위해 넉넉하게 보내주신 것이다. 모아진 쌀을 아이들과 함께 깨끗이 씻어서 충분히 불린 다음 학교 인근 방앗간으로 들고 갔다. 아이들과 함께 캔 쑥이고 쌀은 조금씩 모아서 함께 씻었다고 하니 방앗간 아주머니가 웃으셨다. 이것으로 무엇을 할까 궁리하시더니 쑥 설기를 하지고 하셨다. 다음날 아침에 찾으러 오라고 하셨다. 운전대를 잡고 돌아오는 길에 입가에 미소가 번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게 웬 고생일까?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봄 수업을 이렇게 재미있게 할 수 있다는 교사로서의 자부심, 맛있게 먹을 아이들, 할머니 수고로 행복해지고 자아존중감이 높아질 영후……. 교사인 내가 존재하는 이유다.

  아침 일찍 찾아온 쑥설기에는 온기가 가득했다. 큼지막하게 떼어서 이반 저반 나누어주는 아이들도 마음도 따뜻하게 달아올랐다. 혼자만 먹고 즐기기보다 땀 흘려서 만든 것을 함께 나누고 즐거워하는 기쁨을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배워갔다.

  봄 프로젝트 수업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꽃은 예쁘다. 아이들이 만든 화전도 예쁘다. 층층이 쌓인 쑥설기 결도 예쁘다. 하지만 함께 땀 흘리고 나누고 즐기고 감사하고 배려하는 사람들이 더 예쁘다. 사람이 꽃 보다 더 예쁘다.

  수업을 마치고 영후 할머니가 삶은 쑥과 함께 보내주신 편지를 다시 한 번 읽으면서 가슴 한 곳이 뭉클함을 느꼈다.

 
  선생님!

  사실 쑥 떡용 쑥은 처음 삶아 본지라 잘 삶아졌을지 걱정이 되지만 깨끗이 씻고 소다 같은 것 넣지 않고 정성껏 삶았답니다. 방앗간 사장님이 어떻게 평가하실지 살짝 걱정이 돼서요. 너무 삶아지면 쑥 색깔이 예쁘지 않다고 들었거든요.

  - 중략 -

  영후가 진달래 꽃을 따서 달콤하다고 했어요. 꽃이 더 떨어지기 전에 부침이라도 해 주려고 했는데 선생님께서 기억에 남는 추억을 만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박성욱(구이초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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