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의 묘약으로 소상공인의 눈물을 닦아주자
상생의 묘약으로 소상공인의 눈물을 닦아주자
  • 정원탁
  • 승인 2017.05.02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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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주변에서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생소한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무엇인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은 상류사회계층인 젠트리(gentry)에서 파생 됐는데, 특정도시가 고급스럽게 변화하는 ‘주거지의 고급화 현상을 의미한다.

또한 “도시 환경이 변하면서 중·상류층이 낙후됐던 구도심의 주거지로 유입되고 이로 인해 주거비용이 상승하면서 비싼 월세 등을 감당할 수 없는 원주민들이 다른 곳으로 밀려나는 현상”을 의미하며, 최근에는 이러한 뜻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빈곤지역 또는 재개발 필요 지역의 고급화로 자연스럽게 개발의 물살을 타게 하니 균형발전의 방향으로는 꽤 매력적인 요소지만, 그 이면에는 생계형 창업으로 생계를 꾸려나가는 소상공인들이 일터에서 내몰리고 있다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몇 년 동안 열심히 장사해서 이제 좀 잘되고 돈이 벌리겠다 싶으면, 건물주들이 월세를 턱없이 올리고, 심지어 건물주가 직접 그 자리에서 장사한다고 쫓겨나기까지 한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장사가 망하지 않으려면 좋은 건물주를 만나야 하는 현실이 우리 소상공인들의 힘을 더욱 빠지게 한다.

우리 지역에서도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은 예외가 아니다. 전주 한옥마을 동문예술거리는 전주의 문화 1번지로 불릴 만큼 역사성과 상징성이 짙은 곳으로 향토 예술인들의 둥지였다. 그러나 한옥마을이 전국적인 관광지로 급부상하면서 치솟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게 되어 많은 예술인들과 문화공간이 다른 곳을 찾아 떠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최근 한옥마을과 더불어 전주를 찾는 젊은층 사이에서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는 ‘객리단길’도 마찬가지이다. 임대료가 저렴한 구도심에 청년창업이 이어졌고, 젊은층을 겨냥한 아이디어와 맛,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신조어를 만들어 낼 만큼 명소로 급부상했지만, 입소문을 타고 급작스럽게 오른 임대료로 인하여 청년 창업가들 또한 그들이 열심히 일군 일터에서 내몰리고 있는 실정이다.

전주시는 건물주와 세입자간 상생협약을 유도하는 등 낙후지역 개발에 따른 임대료 상승으로 애로를 겪는 영세 소상공인의 보호를 위해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를 제정했다. 둥지 내몰림 현상 예방을 위한 조례가 제정된 지자체는 서울에 이어 지방에서는 전주시가 처음이었기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임대인과 임차인의 상생에 대한 진정한 이해’가 수반되지 않는다면, 상생협약은 임대료 상승을 억제하는 실질적인 효과 없이 그저 협약에 그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법 제정이 우선으로 필요하고, 장기적으로 건물주-세입자간 동반 상생에 대한 사회전체의 인식 변화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시 말해, 지역경제 위기 속에서 소상공인이 안정된 사업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서로 상생의 협력관계를 다지는 것이 필요하다. 즉, 임대인과 임차인은 갑을관계가 아니라 ‘쌍방투자’를 하는 ‘동업’관계로 인식해야 한다. 임대인이 건물에 투자를 한 것처럼 임차인은 매장에 투자해서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한편, 중소기업청에서는 보다 근본적으로 영세 소상공인의 둥지 내몰림을 막고 지역 특화상권 활성화를 위해 ‘자율상권구역의 지정 및 운영’ 등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 중이다.

즉 법률에 의거 자율상권을 정한 뒤 건물주와 상인의 자율협약을 통해 과도한 임대료 상승을 막고 상가 임대차계약 갱신요구권 행사기간을 5년에서 10년으로 늘리는 것이 골자이다. 자율상권구역으로 지정되면, 자생적으로 형성된 특색있는 상권을 육성하고, 기존 소상공인의 영업권을 보호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 지역의 소상공인은 지역경제의 기초이자 가정유지의 근간이 되는 경제 구성원으로 우리 부모 세대의 얼굴이고,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자율상권구역의 지정’과 같은 제도적인 장치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이제는 우리 사회가 조금 더 적극적인 자세로 상생의 묘약을 찾아 폐업의 기로에 선 소상공인들의 눈물을 닦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정원탁<전북지방중소기업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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