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챙이 시절을 잊지 말자
올챙이 시절을 잊지 말자
  • 김종일
  • 승인 2017.05.01 23: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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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월이다. 봄을 맞아 하루하루 달라지는 창밖의 삼천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린 시절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르곤 한다. 전주천은 시내를 관통하는 탓에 그때도 이미 시커먼 구정물이어서, 미역 한번 감을라치면 꽤 멀지만 삼천까지 찾지 않을 수 없었다. 동네 친구들이랑 흙먼지 펄펄 날리는 뙤약볕 길을 걷다가, 운수 좋게 말 구루마나 소 구루마를 만나면 쥔장 허락도 없이 무작정 올라타고 보던 무임승차 길에 무엇이 그리도 좋았든지 히히덕거리던 시절이 삼천 위로 비치곤 한다. 돌이켜보면 모두가 참이나 궁핍하고 힘들었던 시절이었지만, 아직 물정 모르는 철부지이기도 했고 사는 게 그러려니 하고들 살았던 것 같다. 만약 그때 우리나라에서 행복도 조사했더라면, 아마 지금 부탄이나 방글라데시 같은 빈민국들처럼 세계에서 손가락 안에 끼는 행복한 사람이었을 지도 모른다.

대개 가난한 나라로 분류되는 개발도상국들을 찾다 보면 자연스럽게 현재 보이는 그들의 모습을 과거 우리의 그것과 비교하면서 되새김질하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나라들의 행복도가 대개 선진국들보다 높은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하지만 잠시 생각해보면 당연하다.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 느끼는 행복감은 “모르는 게 약이다”라는 속담의 전형으로 이해하면 쉽다. 그리고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경제적 풍요와 행복감이 궤를 같이하지 않는 이유도 당연하다. “중이 고기 맛을 알면 절에 빈대가 남아나지 않는다”라는 속담이 말해주듯 “아는 게 병”이 되어 버리기 때문일 것이다. 한번 ‘고기 맛’을 알게 되면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격이 되어 쉽사리 멈출 수가 없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질주의 대열에 뛰어들어 버린 것이다. 의아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과거 성인군자라 불리는 사람들이 주창했던 ‘안분지족’이 가르치는 제 분수에 만족할 줄 아는 삶은 자연의 법칙에 어긋난다. 최소 시간의 원리와 최소 작용의 원리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말해주듯 자연에는 경제성 내지는 효율성 추구의 원리가 내재하여 있다.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적은 비용으로 주어진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현재 문명사회의 요구는 결코 인위적인 것이 아니며 자연의 본질에 기인하는 근본적인 성격의 것이다.

고기에 맛 들어 호랑이 등에 올라탄 우리는 지난 50여 년 동안 세계사에 유례가 없는 가히 천지개벽이라 할 만한 발전을 이루었다. 그 과정에 행복감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것들을 희생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여러 개발도상국의 현실을 목도하면서 우리가 겪어온 지난 50년을 돌이켜 보면, 우리가 가장 적은 희생으로 가장 많은 것을 이루어낸 자랑스러운 민족이라는 결론에 이르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성취한 오늘의 대한민국의 모습이 바로 그 증거가 될 수 있다. 세계의 많은 개발도상국들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이 우리나라를 롤모델로 삼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우리의 미래는 매우 불투명하다. 일반적으로 비관적인 시각이 우세하다. 목전의 인구절벽이나 청년취업난에서 드러나듯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더 이상 나아가기 어려운 하나의 임계점에 도달했고,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는 과거와 다른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는 것은 모두 다 인식을 같이한다. 현재 대한민국은 출산율 증가나 일자리 창출과 같은 단방약으로 해결할 수 있는 찰과상이 아니라 생사를 가를 수도 있는 중병으로 위태로운 상황에 가깝다.

여러 개발도상국의 현실을 경험하면서 그들을 반면교사로 해법을 찾아보는 것이 도움될 수 있다. 과거 50년 전 우리와 현재 개도국들의 가장 큰 차이점을 꼽아보면, 그때 우리는 모두가 가난했지만, 지금의 개도국들은 그렇지 않다. 우리는 모두가 가난했기에 성장 중심의 국가 운영 전략은 옳았다. 하지만 현재 개도국들의 빈부 차이는 상상을 초월한다. 지니계수 등 관련 지표에서는 그렇게 나타나지 않지만, 그것은 개도국들의 허술한 통계 자료를 대변해줄 뿐이다. 따라서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고민해야 하는 개도국의 고민은 뜻밖에 만만치 않다. 두 마리 토끼는 잡을 수 없기에 중국과 베트남처럼 대개 개도국들이 우리와 같은 성장 중심의 발전 모델을 택하고 있는데, 지나친 부의 편중은 시간의 문제일 뿐 걷잡을 수 없는 사회 혼란으로 이어질 것으로 점쳐진다. 적정한 분배는 개도국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사사하는 바가 크며, 현 시점에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도약의 패러다임 정립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으로 보인다.

우리에게도 성장과 분배의 갈등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성장을 동력으로 내외형적으로 세계 10위권의 경제 규모를 갖춘 지금 자연스럽게 과거보다 분배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높아졌다. 날이 갈수록 복지를 둘러싼 좌와 우의 논쟁이 뜨거워진다. 원칙적인 측면에서만 보자면 해법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물이 자연의 법칙에 따라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자본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흘러 내려가게 하는 방식의 분배다. 가장 적절한 방안은 기업들의 자발적이며 왕성한 투자를 이끌어 내는 정책일 것이다. 투자를 통해 돈이 자연스럽게 아래로 흐르고 더불어 기업도 성장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방식이다. 강제적이거나 인위적인 조치는 심각한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 어떤 정책도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준다는 대원칙에 어긋나서는 안 될 것이다. 한쪽에서 뺏어서 다른 쪽에 퍼주는 것은 복지가 아니다. 우리를 다시 올챙이 시절로 인도할 뿐이다. 가끔 그 시절이 그립긴 하지만 돌아가기는 싫다.

김종일<전북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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