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정치, 우리 모두의 몫
여성 정치, 우리 모두의 몫
  • 이해숙
  • 승인 2017.04.24 1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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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3년 6월 4일, 영국의 남부 앱섬다운스의 한 경마장에서 일어난 일이다.

더비경마가 열리는 그날 수많은 경주마들이 결승점을 향해 질주하고 있을 때, 결승점 바로 앞 난간 위에 흰 옷을 입은 젊은 여성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

결승점으로 달려오는 경주마들의 말굽소리가 점점 가까이 들려오고 관중들의 술렁거림이 커지고 있었다. 경주마들이 결승점 반 바퀴를 남기고 직선주로에 들어섰을 때 그 여성은 경주 코스 한가운데로 달려나갔다. 그리고는 거친 숨을 몰고 달려오는 국왕 조지 5세의 말인 앤머 앞으로 뛰어들었고 말에 가슴을 부딪친 여성은 공중제비를 돌아 쓰러졌고, 기수도 땅바닥에 내팽개쳐졌다.

그녀는 꽃다운 서른두 살, 영국 여성들의 투표권을 얻기 위해 국왕 조지 5세에게 자신의 몸을 던져 저항했던 에밀리 와일딩 데이비슨이었고, 숨진 그녀의 외투에는“VOTES FOR WOMEN”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렇게 여성들의 참정권은 남성들의 선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에밀리 데이비슨과 같은 수많은 여성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처절한 싸움의 결과로 얻어진 것이다.

우리나라의 여성들이 얻은 참정권 역시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며, 지금의 현실 또한 온전한 형태는 아니다.

1898년 9월 1일 서울 북촌의 부인들의 여권통문 에서부터 시작된 여성의 정치적 참여 확보는 지금까지의 긴 역사적 과정 속에서 성장해 왔지만, 여전히 남성과 여성의 차별을 나타내는 성평등지수가 세계 115위, 남녀 임금격차 OECD국가 중 1위, 여성의 사회참여율 꼴찌인 나라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이제 다음 정부를 책임질 대통령 선거는 시작되었고, 이번 선거에 임하는 후보들의 공약에서 ‘기초의원 정당공천 배제’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기초의원들을 머슴 부리듯 한다는 지구당위원장들의 전횡을 막는다는 취지로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를 하겠다는 것인데, 문제는 이러한 제도가 오히려 여성들의 정치참여를 제한하게 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지금 여성정치인의 현실은 초라하다.

지난해 치러진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여성의원의 비율은 17%에 불과하고, 전라북도의 여성 지방의원의 비율이 남성의원들의 18.3%에 불과할 뿐이다.

또한 당선된 국회의원의 경우에도 여성 지역구의원은 남성의원들의 10.3%인데 반해 비례대표의 비중은 53%를 차지하고 있고, 지방의원은 지역구의원은 7.1%인데 반해 비례대표 비중은 62%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그동안은 여성의원 비례할당제와 같은 제도를 통해 그나마 여성들의 정치적 진출이 가능했지만, ‘기초의원 정당 공천 배제’가 현실화 된다면, 상대적으로 ‘사회적 활동의 반경’이 좁아서 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여성정치인들이 기초의회에 진출하기가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며, 좁아진 여성의 정치 참여환경은 국민들이 체감하는 정치적 만족도에 있어서도 현저히 떨어뜨릴 것이 분명하다.

정치적 역량이라는 것이 ‘사회활동의 반경’에서만 찾아지는 것이 아니고, ‘국민의 삶에 근거한 정책의 개발’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정치적 역량 배분’과 같은 여성들의 섬세함으로 도드라질 수 있는 ‘관계 지향적인 역량’에서도 찾아져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국가 사회적으로 만연한 적폐를 청산하느냐 못하느냐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정치적 기로를 맞이하고 있다.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수평적 사고 관계를 중시하는 리더십이 필요한 시기이며, 여성들의 정치 참여가 더욱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기초의회 정당공천 유지냐 폐지냐의 논쟁에서 중요한 것은 아직도 18%에 머무르는 여성의원 여성의 정치적 대표성을 어떻게 높일 것이며, 여성들의 정치적 역량을 어떻게 키워서 국가 사회적 정치과제 해결에 그 역량을 활용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이다.

여성들의 역할이 더 이상 위축되어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최초 여성대통령 박근혜의 실패도, 당당한 가치를 드러내는 심상정의 도전도 ‘절반의 몫’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몫’이기 때문이다.

이해숙<전북 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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