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책임과 실천: 포정해우
정치의 책임과 실천: 포정해우
  • 정항석
  • 승인 2017.04.20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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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추전국시대(B.C. 770-221), 양(梁)나라에 포정이라는 솜씨 좋은 백정이 있었다. 어느 날 포정이 소를 잡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마침 문혜군(文惠君 B.C. 371-335)도 이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포정이 이리저리 익숙하게 손을 놀릴 때마다 사람들은 감탄하였고 마치 그는 퍼포먼스를 하듯 예술적으로 소를 해체하고 있었다. 일을 마치자 문혜군이 물었다. “매우 훌륭하다! 어떻게 이리 할 수 있는가?”포정이 답을 올렸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저는 소의 겉모습만 보았습니다. 3년이 지나자 소를 겉으로만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려 했습니다(而不以目視). 마음에 따르는 것이 순리라고 생각했습니다(依乎天理). 때로는 멈추고 행하며 또한 더디게 하기도 합니다(視爲止 行爲遲). 소의 살과 뼈 등의 틈을 자연스럽게 벌리고, 그 속에 칼을 넣는 것은 본디의 형태를 파악하며 행하는 것이지요. 저는 이 칼 하나로 19년 동안 수천 마리의 소를 해체했습니다만 보시듯이 아직도 날이 이와 같습니다.” 포정의 말에 문혜군은 감동했고 ‘의식적으로 행하지 않고 자연의 이치를 따르려는 양생(養生)을 배우게 되었다’고 <장자(莊子) 양생주(養生主>에 전한다.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세 가지가 눈에 띈다. 첫째, 가장 천하다고 하는 백정과 군주의 만남이다. 군주는 백정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았고 백정은 할 말을 다하였다. 둘째, 세상에 하찮은 것은 없다. 포정에 따르면 ‘구조를 보면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것을 모색할 수 있다’ 하였다. 셋째, 일의 귀천을 떠나 하려는 의지와 한 가지 기술만 있으면 보람과 천리(天理)까지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일의 중요성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일에 긍지를 가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일을 하고 싶다는 청년들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우리의 고민은 사뭇 이전과 달라야 한다. 청년실업! 기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어쩌면 모레나 글피에도 반복적 문제가 될 것이다. 2016년 3월 통계청의 발표를 빌리면 15세에서 29세 미만의 청년실업이 56만명이다. 계약직을 취업에 포함시킨다 하더라도 감소의 경향은 보이지 않고 있다. 밖에서 봐도 그렇다. OECD 회원국 35개 중 최근 3년간 청년 실업률을 비교할 경우 실업이 상승하고 있는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여섯 나라 정도이다. 작금의 세계경기가 침체를 겪고 있는 것을 감안한다 하여도 우리의 청년실업은 매우 심각하다. 되짚어 보자.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불어 닥친 실업위기는 청년들에게 그만큼의 아픔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IMF위기 이후 한국의 실물경제는 한 번도 마이너스 성장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97년 이전의 청년고용은 상당부분 중복되거나 정리해고의 인원만큼 환원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고민은 여기에 있다.

무용한 언급이지만 4년 전에도 그랬다. ‘정말 청년들을 위한 정책인가’하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매우 추상적인 청년정책이 제시된 바 있다. 그저 표만 의식한 것이다. 4년이 지난 오늘날 대선 후보자들의 생각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한 후보는 ‘국민연금을 재원으로 활용해 청년희망 임대주택을 대폭 확장’하겠다고 하고 또 다른 후보는 ‘신혼부부에게 반값 공공임대주택’를 공급하겠다고 제시하였다. 과연 국민연금으로 임대주택을 그리고 신혼부부에게 임대주택을 공급하겠다는 생각이 청년들의 실업을 해소하는 것인가? 국민연금이 청년실업을 해결하는 재원인가? 그리고 신혼부부들에게 임대주택 공급하면 청년실업이 해소되는가? 너무 엇나가 보인다.

과연 포정과 문혜군의 만남처럼 직접 청년들의 실정 속에서 정책이 나올 수는 없는 것일까? 여전히 전근대적인 계획경제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닌가? 국가예산은 ‘주머니돈 쌈지돈’이 아니다. 국민연금의 목적은 그 사용에 맞게 하여야 하고 그 재원마련 역시 그에 걸맞아야 한다. 본질은 이렇다. 근본적으로 청년들이 그들의 노동력을 아끼지 않으면 언제든지 경제활동인력으로 사회에 환원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살과 뼈의 틈을 벌리는 자연스럽고 효과적인 것’이 요구된다. 딴은 이렇다. 첫째, 1997년 이후 2017년에 이른 오늘날 20년이 지나도 해결되지 못한 것이 단번에 해결되지 못한다. 현재 한국의 고용구조는 획기적인 산업구조와 인식의 변화 없이는 5년 안에 해결되지 못한다. 소를 잡기 위해 걸리는 데 3년이 걸리고 버릴 것 없이 소를 해체하는데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한다고 했다. 둘째, 정책의 필요성은 사회적 위기를 반영한다. 따라서 그 원인과 결과의 예측은 연역적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에 대한 사회적 분담을 과감히 요청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정책을 제시할 때 누구든지 노동력을 아끼지 않을 의지가 있는 모두에게 일의 존귀함과 그 대가를 투명하게 예측할 수 있는 측면에서 청년실업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야한다. 셋째, 직업종류를 확장하는 것이다. 서구와 비교하여 우리 사회는 일의 종류가 상당부분 제약되어 있다. 노동에 대한 인건비의 차이를 보이는 것도 문제이지만 직업의 분화가 이루어지는 것이 필요하다. 이런 면에서 실업정책은 고용비율에 해당되지 못하는 청년들을 경제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 것에 치중되어야 한다.

포정해우의 고사는 여전히 말한다. 무엇을 하든 신중해야 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그저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래 걸리더라도 신실한 마음에 따르는 것이어야 한다(依乎天理). 대선 후보들과 그 측근들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겉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며 그저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일환이 아니기를 바란다.

정항석<캠브리지대 연구학자, 전 대통령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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