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그림자를 등불로 밝힌 수행자의 모습
고난의 그림자를 등불로 밝힌 수행자의 모습
  • 김동수
  • 승인 2017.04.20 14: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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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의 금요 전북문단 / 36.윤현순(尹賢順:1956- )

전북 남원 출생. 꽃화원을 운영하면서 1996년 <<시대문학>>으로 등단. 전북문인협회, 원불교 문인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2003년 시집 <<되살려 제 모양 찾기>>, <<중심꽃>>, 2013년 <<노상일기>>를 발간, 1996년 전북시문학상과 시대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전북여류문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제1회 구름재 박병순 시낭송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세월은 강 위에 뜬 징검다리였을까

두려움으로 건너지 못하는, 그러나

살아 있는 동안 건너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의 저 두려운 징검다리

-<징검다리 뛰어 넘기>에서, 2003

‘어른이 되어서도 늘 따라 다니며/ 내 앞을 가로막았다’ 고 한다. 그러나 ‘건너지 않으면 안 될/ 운명의 저 두려운 징검다리’앞에서 그의 시는 구원의 염불처럼 발(發)하고 있다. ‘절벽에 매달린 풀꽃을 보았다/[...]/ 저 풀꽃처럼 살려고 했으나/ 오장을 들쑤시는 바람의 칼’(<섭리1>) 앞에서 스스로 ‘바람이 되고 / 불볕이 되고/ 풀꽃이 되는 섭리를’ 깨달아 재생과 부활의 길을 모색, 어둠의 자맥질, 그 골똘한 사투 끝에 스스로 터득한 활로의 길이다.

바람에 부러진 은행나무

밑동에서 곁가지가 나왔다

어린 곁가지는 엄지손가락 두께로 살이 올랐다

[...]

그렇지, 홀로 사는 도장집 할아버지가

단단하기며, 광택이며, 알맞은 굵기 좀 보라고 한다

다시 살아나 쓰레기가 될 뻔한 곁가지

당당한 한 인물을 대신하는 도장이 되었다.

-<되살려 제 모양 찾기 5> 일부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 곧 무용지용의 이치를 깨달아 그것들에게 새로운 숨결을 주는 것, 그리하여 ‘꼭 어울리는 자리에서 제 빛을 내도록 할 것, 그것이 새 생명에 보답하는 일이 아니겠는가?(<<되살려 제 모양 찾기>> 서문)’라고 반문하고 있다. 오랜 세월 화원을 운영하면서 터득한 생의 진리를 수행하는 자세로 그것들에 생명을 부여하는 보살행을 실천하고 있는 모습이다.

속으로 속으로만 숨어 있다가

오늘은 안개꽃이

중심꽃을 하겠단다

다른 꽃들은 비켜 꽂고 안개꽃을

중심에 앉혔다

여러 꽃들이 치장을 돕는다

감춰진 빛을 드러내니

제법 모양새가 잡힌다

안개꽃도 중심꽃이 될 수 있구나

-<중심꽃> 일부

‘안개꽃도 중심꽃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것은 주객전도, 자리바꿈, 흔히 일컫는 사회적 진실과 아름다움이라고 하는 것도 기실은 관점과 시대에 따라 흑(黑)이 백(白)이 될 수 있고, 백이 흑도 될 수 있는 상대적 개념임을 일깨워 준 하나의 법문이다. 물질적인 세계와 공(空)의 세계가 다르지 않는 색즉시공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의 세계, 그리하여 ‘떠나보내고 덜어내고 비워감으로써 다시 채워지는 진공묘유의 세계(<<중심꽃>>서문)를 그리고 있다. 아니 ‘끊임없이 솟아나는 정열의 표상’이기도 하다.

그래요/ 여기 발붙이고 사는 것이 복이지요// 달빛이 저렇게 눈이 시린데

-<노상일기 24>에서, 2013

시를 통해 삶을 가다듬고, 시를 통해 자신을 일으켜 세워 ‘생의 한 고비 한 고비를’ 넘어 ‘더 재미있을’(<노상일기> 서문) 내일을 기대하고 있다. 하루하루 설레는 마음으로 자신을 피워 자아 생성의 길을 모색해 가고 있다.

 

(김동수: 시인, 백제예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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