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람에서 무덤까지
요람에서 무덤까지
  • 김현수
  • 승인 2017.04.1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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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람에서 무덤까지. 1942년 영국의 수상인 윈스턴 처칠이 경제학자인 베버리지에게 발표하게 한 보고서에서 유래한 이 말은 이후 전세계적으로 복지정책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문구가 되었다. 2차 세계대전의 와중에 발표된 베버리지의 보고서는 군대의 파병을 통해 획득한 부의 혜택을 귀족 등의 일부 계층만이 향유하는 행태를 꼬집고, 모든 국민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을 마감하는 순간까지 국가의 책임하에 골고루 복지가 보장되는 사회를 이룩하여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국가가 모든 복지를 책임지고 국민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누구나 꿈꾸는 이상향이나, 모든 복지 분야를 완벽하게 책임지는 국가는 매우 드물다. 복지의 확대는 비용의 증가가 필연적으로 수반되는데, 국가 재정이 이를 감당할 수 있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증세를 통해 복지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으나, 선거를 통해 선출된 국가 지도가들이 증세에 대한 국민 저항을 쉽게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또한 매우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와 같은 상황에 예외일 수 없으며, 이로 인해 다른 여러나라와 마찬가지로 선별적인 복지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분야가 많다.

 가용한 국가 재정으로 모든 복지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는 상황이라면 제한된 예산으로 선별적 복지정책을 시행하면서도 최대한 많은 국민이 삶의 안정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이러한 고민에 대한 해답은 어떤 삶이 가장 행복한 삶인지 파악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 가장 행복한 삶은 과연 무엇일까? 아마도 최근 인기있었던 가요의 한 구절처럼 ‘아프지말고 행복하자’ 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국민들의 행복을 위해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아프지 않게 또는 아파지더라도 큰 고통을 받지 않도록 복지정책을 펴는 것이다.

 여러 경로를 통해서 찾아오는 인간의 고통 중 가장 흔하고 일반적인 것이 질병으로 인한 고통이다. 여러 질병 중에서 우리 국민의 사망률 1위를 차지하며 많은 환자와 가족들에게 육체적, 정신적, 경제적 고통을 주는 질병은 암이다. 수십 년간 전세계적으로 천문학적인 예산이 암 연구에 사용되었으나, 수많은 과학자들이 이루어놓은 진보는 여전히 몇 가지 암 또는 초기암에 주로 국한되어 있는 경우가 많으며, 암의 진행이 상당히 이루어진 경우에는 여전히 완치를 장담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들을 암의 고통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일은 모든 국민들로 하여금 정기적으로 암 검진을 받게 함으로써, 암이 발생하더라도 최대한 빨리 진단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의 보건복지부에서도 암 검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초기에 암을 발견하고 치료받아 완치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현재의 암 검진체계는 발생률이 높은 5대암으로 국한되어 있고 암에 따라서는 검진방법도 기초적 검사에 국한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암의 진행이 상당히 이루어진 후에 발견되는 경우가 여전히 적지 않다.

 제한된 예산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발병률이 높은 암에 대해서만 검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을 탓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암 발병률은 다양한 생활 및 환경인자의 영향을 받고, 특히 연령 증가와 직접적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젊은 사람들에건 매우 희귀한 암이 고령의 어르신들에게는 흔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은데, 그렇다면 간암 고위험군인 사람들에 대해 검진 프로그램을 다르게 적용하는 것처럼 어르신들을 모든 암의 고위험군으로 분류하고 검사를 받게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5대암 외의 암에 대한 검진 프로그램의 적용이 예산에 무리가 된다면 5대암 검진보다는 국가의 부담률을 다소 낮추거나, 70세 이상에 대해 일단 적용을 시작하고 추후 예산확보에 따라 그 대상을 점차 확대해 나가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이마저도 어렵다면, 최소한 어르신들에게 여러 암의 발생률 증가와 검진방법을 알리는 노력이라도 해야 할 것이다.

 고령의 나이에 암진단을 받은 분들 중에는 국가에서 시키는 대로 꼬박꼬박 검사를 받았음에도 왜 암이 진행된 후에야 발견됐는지 억울해하고, 의아해하며 고통받는 경우가 많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온 요즘 여러 후보들이 복지공약을 쏟아내고 있고, 어떤 후보는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슬로건을 실제로 사용하는 경우도 보았다. 이들은 진정으로 우리가 향유하고 살아가는 모든 것들을 이룩하기 위해 젊음을 희생하고 나이 들어 암으로 고통받는 국민들을 생각하고 있는가? 그 대답은 각 후보 자신만이 알겠지만, 아직까지는 이에 대한 공약을 발견하기 어렵다.

 김현수<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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