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와 이기붕
4.19와 이기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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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7.04.18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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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9혁명을 촉발하게된 원인은 자유당 정권의 국민 탄압정치 때문이었다. 특히 당시 이승만 정권의 실세인 이기붕 국회의장이 주범이었다.

▼ 1960년 3월15일 실시한 대통령과 부통령 선거에서 무려 80%가 넘는 높은 득표율을 보인 대통령 이승만과 부통령 이기붕의 당선을 위한 자유당 정권의 불법.부정선거 결과였다.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마산 시민의거와 마산 상고 재학생이던 남원 출신 김주열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채 강에서 시체로 발견되고 4.18 고려대학 시위학생 습격사건등이 이어지면서 전국에서 수천여명의 학생 시민이 참여한 4.19의거가 일어났다.

▼ 서울에서만 130여명의 무고한 학생·시민이 희생됐고 1천여명이 넘는 시민들이 다쳤다. 당시 4.19혁명 데모대가 서대문 적십자병원 근처에 있는 이기붕 집을 처들어갔다. 막상 집안을 본 데모대들이 놀랐다. 한 여름철에나 맛볼 수 있던 수박이 수십여개나 널려 있더란다.

▼ 지금이야 비닐하우스 재배로 봄철에도 먹을 수 있지만 비닐하우스가 없던 시절이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뿐만이 아니다. 서민들은 꿈도 못꿀 산양노루.코카콜라.전기담요.은어.호랑이뼈 등 오만가지의 고가품들이 즐비하더라는 것이다. 이 모두 실세에게 아첨하기 위해 바친 선물들이었다고 한다.

▼ 그 시절만 해도 우마차로 장작을 싣고 파는 장사치들이 흔했고 서민들은 지게에 땔감나무를 지고다닐 때다. 물론 지금은 서민집 냉장고에도 흔히 들어 있는 것들이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요즘의 권력자들 곳간(?)에는 어떤 고가품들이 들어 있을까? 그러고보니 오늘이 47주년을 맞은 4.19혁명 기념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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