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판 바늘 끝은 떨린다
나침판 바늘 끝은 떨린다
  • 이문수
  • 승인 2017.04.17 1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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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스승이 없는 시대다’고 말한다. 스승이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길’을 가리키는 사람이다. 그런데 길을 묻는 학생이 없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왜냐면 모든 사람이 다투며 달려가는 목표가 ‘자본’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학생은 목표에 쉽고 빠르게 도달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사람’을 찾을 뿐이다. 그래서 진정한 스승이 없을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이 달려가는 길이 아니라, 우리가 묵묵한 걸음으로 가야 할 길을 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쟁과 효율과 속도에 편승하는 신자유주의의 담론으로부터 손을 뗄 수 있는 용기를 내야만 한다.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항상 북극을 향하는 나침판처럼 두려운 것을 해내는 것이다. 북극을 가리키는 나침판 바늘 끝이 항상 떨리는 이유는 사명을 처음처럼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자신들이 설정한 예술의 가치를 향해 평생을 북극으로 향하는 나침판 바늘처럼, 처음처럼, 새봄처럼, 다시 새날을 열면서 예술혼을 불사르는 전북의 원로미술가를 만나보자.

전북도립미술관에서는 오는 5월 21일까지 <전북의 원로작가> 전을 열고 있다. 후학을 양성하면서, 삶의 궤적을 녹여서 원숙한 작품을 구축한 원로미술가들의 농밀한 작품세계를 만끽할 수 있다.

박남재 화백은 순화한 감성으로 자연을 화폭에 담아서 서정적인 정서를 느끼게 한다. 그의 함축적인 표현은 묘사적인 재현보다 더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호소력이 있다. 더러는 담담하고 더러는 격정적인 붓질은 원로의 농밀한 열정과 맞닿아 있다.

홍순무 화백은 격동하는 현대미술의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고향 산천과 이웃 사람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화폭에 담은 화가. 오랜 교직 생활을 마치고 자유로워진 화백은 더 젊어지고 더 밝아진 작품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자신만의 작업 공간에서 자아 속에 투영되는 인간의 순수한 정신을 찾아가고 있다.

방의걸 화백은 채우기보다 비움을 즐기는 화가. 물과 먹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는 화백의 작품들은 명백하게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목정은 “그림은 평생 그 안에서 울고 웃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놀이”라며 “거창한 회화이론이나 철학사상은 없다. 다만 그리고 싶어서 그리고 그냥 그린다.”고 담담한 미소와 함께 화업의 길을 말한다.

우관 김종범 서예가는 자유로운 운필로 유려함이 돋보인다. 우관을 지극히 사랑하신 남정 최정균 선생은 “그는 서예가로서 진지하고 강직하며, 선비의 인품이 배어 있다”고 했다. 그래서 고법을 중히 여기는 사람인지라 우관의 당호를 <탐고재>라 불러 주었다. 급히 서둘지 않고 묵묵한 걸음으로 원숙한 서경을 구축했다.

송계일 화백은 동양의 음양오행 사상에 전착해서 채색과 수묵의 조화, 먹의 농담과 진채의 조화 등 다채로운 표현으로 새로운 공간 개념을 창출했다. 단순하게 눈에 보이는 자연을 체화함으로써 무한히 가라앉은 자연의 섭리와 순환 고리를 의연하게 드러내고 있다. 도도하게 흐르는 한국화의 맥과 정신성을 토대로 현대적 감성을 일깨우고 있다.

한봉림 도예가는 ‘현대도예가’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닌다. 흙과 불을 통해 추상적인 관념으로 확장하면서 영원한 운동과 생명력을 탐구하기 때문이다. 굽이치는 곡선과 뿔의 힘, 깨진 알과 신화적 상상력 등. 최근 작품에서는 단청도료를 캔버스에 뿌리고, 던지고, 흐르게 함으로써 원초적인 행위의 흔적을 탐색했다.

나무는 자기 키만큼 긴 뿌리를 땅속에 내린다. 봄풀을 뽑아 본 사람은 봄풀이 땅속에 얼마나 깊은 뿌리를 뻗고 있는지를 안다. 이 지역에서 뿌리를 내리고 날마다 새롭게 자신을 발견하면서 묵묵히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현한 원로미술가에게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물어보자.

필자는 미술감상을 바람 소리에 비유하곤 한다. 바람 소리는 바람과 구멍이 만나야만 낼 수 있는 소리다. 바람과 구멍의 예기치 않는 마주침에서 만들어지는 것. 제아무리 좋은 작품일지라도 훌륭한 관객을 만나야만 제소리를 낼 수 있다.

이문수<전북도립미술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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