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는 물의 신(神)이요. 물(水)은 차의 몸(體)이니…
차(茶)는 물의 신(神)이요. 물(水)은 차의 몸(體)이니…
  • 이창숙
  • 승인 2017.04.17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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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4>

초의의 일지암 유천(一枝庵 乳泉)

 좋은 물을 찾는 것은 즐거운 일 중의 하나이다. 산행 중에 약수터에서 흐르는 물을 손으로 받아 목을 축여 본 적이 언제인가. 지금은 수질검사표가 있어 나름 물맛을 계산 할 수 있지만 미각(味覺)을 동원해 물맛을 느끼는 기분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옛 선인(先人)들은 어떤 물을 좋은 물로 여겼을까. 차를 마시기 위해 어떤 물을 찾았을까. 육우(陸羽, 733~804)는 『다경(茶經)』에서 차 마시기에 좋은 물을 가리는 비결을 기록하였다.

그는 ‘차를 달이는 데는 산천수(山泉水)를 상품(上品)으로 여겼다. 사람들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떨어진 곳인 오염이 덜된 강물(江水)을 중품(中品)으로, 우물물을 그 다음으로 길어가는 사람이 많은 곳의 물을 취해야 좋다고 하였다. 산천수 중에서도 돌로 된 못(石池)에서 천천히 흐르는 것이 좋으며, 산골짜기에 고여 흐르지 않는 물이나 소용돌이치는 물은 먹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러한 물을 오래 마시면 목병(頸疾)이 생긴다고 주의를 주고 있다’. 산에서 나오는 샘물은 암반이나 계곡에서 흐르는 물로 미네랄이 풍부하다. 물1ℓ에 함유된 광물질 양을 기준으로 대략 함유량이 8mg이상이면 경수(硬水, 쎈물), 이하이면 연수(軟水, 단물)로 본다. 녹차의 경우 쎈물 보다는 단물로 차를 우리면 차색과 향기와 맛이 좋다. 과학의 힘이 아니더라도 이미 터득하였던 것이다. 물을 선별하는 방법만이 아닌 끓이는 시간도 끓는 물의 모양을 따라 기록하였다.

‘차 솥 안에 물이 끓기 시작하면 물고기의 눈망울 같은 작은 기포가 올라오며 가느다란 소리를 낸다. 이것이 첫 번째 끓음이요(一沸). 솥의 가장자리에 물방울이 구슬처럼 솟아올라오는 것이 두 번째 끓음이다(二沸). 물결이 파도치듯 철렁이며 솟아오르듯 하는 것이 세 번째 끓음이다(三沸). 그 이상 물을 끓이면 물이 쇠어 차를 마시기에 적당하지 않다’. 끓는 물의 모양을 보고 물이 순숙(純熟)이 될 때를 살폈으니 차를 마시는 일이 마음을 닦는 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초의 의순(草衣 意恂 1786~1866 )이 기술한 『다신전(茶神傳)』 「품천(品泉)」편에도 차와 물의 관계를 유교적으로 본 부분이 있다.

‘차는 물의 신(神)이요, 물은 차의 몸(體)이니, 제대로 된 물(眞水)이 아니면 그 정신이 나타나지 않고, 제대로 된 차(精茶)가 아니면 그 몸을 나타낼 수 없다.’ 라고 차와 더불어 물의 중요성도 함께 언급하고 있다. 옛 사람들의 차를 마시는 방법과 지금의 차를 마시는 방법과는 거리가 있지만 이렇듯 차의 맛은 물에 따라 달라짐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차를 우린다는 것은 물맛을 분별하는 것으로 차의 종류에 따라 적당한 물과 탕수(湯水)를 판단 할 수있어야한다. 여기 차를 좋아했던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의 많은 시중

“옛 샘물 길어 차를 시험하다”라는 시가 있다.

사나운 용의 턱 아래 박힌 여의주는

「송풍간수도 (松風磵水道)」에서 따온 것일세

성 안팎의 샘물 맛을 시험 삼아 가려보니

제주 사람들도 차를 품평할 수 있을까.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 귀양살이 하던 기간인 1840~1848년 사이에 쓴 시이다. 귀양살이의 외로움과 차 맛을 즐기려는 추사의 마음이 절절히 느껴진다. 이제 햇 차가 나오는 시절이니 좋은 물로 차를 우려 차향에 흠벅 젖어보면 어떨까.

/ 글 = 이창숙 문화살림연구원 원장

※이창숙 칼럼 ‘차의 맛, 소통의 맛’은 격주 월요일자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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