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디-3D’가 어때서?
‘삼디-3D’가 어때서?
  • 이동희
  • 승인 2017.04.13 17: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필자는 이번 대선에서 어느 후보를 선택할 것인가 심사숙고하지만, 특정 후보를 지지하거나 폄하할 생각은 눈곱만큼도 없다.

얼마 전에 문화 예술계 인사들을 차별하는 블랙리스트가 화제가 되었을 때 고은 시인은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속내를 보였다.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지만, 내가 어느 대통령 후보를 지지해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나는 대통령 후보 ‘따위’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이 발언의 취지를 나는 이렇게 보았다. 한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만큼 막중한 책무를 지닌 대통령이라는 지위를 얕보자는 것이 아니다. 다만, 대통령도 권력자이기 이전에 먼저 ‘한 사람-한 시민’일뿐이라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지적했을 따름이다. 더구나 아직 대통령도 아니고, 그 자리에 오르겠다고 나선 ‘후보자’가 아닌가!

이걸 누가 모를까마는 우리 사회는 정치 과잉이 아니냐 싶을 만큼 정치성향이 강한 것으로 보인다. 정치에 관심을 많이 가지는 것이 나쁠 것은 없다. 이미 선각자들은 ‘인간을 정치적 동물’로 보았으며, 또한 ‘인간은 정치를 혐오하는 방법으로 정치에 참여한다.’는 정치의 본질이 잘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상머슴[공복公僕]인 대통령을 특별한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포장한다든지, 혹은 왕정시대처럼 굴종하고 떠받들어야 할 지존(至尊)으로 여기려는 풍조가 아직도 남아 있는 듯하다. 이런 ‘신민(臣民)의식’이 지속하는 한 민주주의는 먼 나라 이야기가 될 것이며, 나아가 대통령 탄핵이라는 불행한 사태가 또다시 오지 말라는 법도 없을 것이다. 블랙홀 같은 정치 만능주의에서 벗어나려면 대통령에 대한 인식부터 바뀌어야 할 것이다.

대통령 후보자가 정상적이고 상식적인 인식능력을 갖췄는가를 검증하는 것은, 대통령 선거에서 국가적 불행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자니 정책 검증과 함께 사람됨을 검증하는 잣대로 후보자들의 발언 한마디에도 민감한 반응이 따른다.

그중에서도 어느 후보자가 ‘3D 프린터’를 ‘삼디 프린터’라고 말했다고 해서 ‘4차 산업혁명시대’에 걸맞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이런 지적에 다른 후보자도 가세하여 시대에 뒤떨어진 인식 수준이라며 ‘삼D’ 발언자를 공격한다. 이런 식의 검증이 소모적이고 핵심을 비켜가고 있다고 보는 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현상 때문이다.

하나는 정치를 말장난 수준으로 전락시켜 정작 중요한 정책 검증을 놓치는 역효과를 들 수 있다. 또 하나는 대통령 후보자가 보통사람의 언어 수준을 구사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모국어 사용을 비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볼 수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는 우리말에 외국어를 섞어 쓰는 것을 특별하게 치부하는 비뚤어진 버릇이 생겼다. 이런 발상은 마침내 ‘온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머슴[공복]들의 공식 용어조차도 ‘일부 국민’만 알아들 수 있는 말-외국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풍조를 낳았다.

말은 시대의 유행에 맹종하거나, 정치적인 유·불리에 따라 변질하여도 좋을 소모품이 아니다. 모국어는 바로 사람됨의 근본을 이루는 핵심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칠레의 민족시인은 말이 지닌 엄숙성을 이렇게 노래하였다. “말의 모성적 원천을,/ 그리고 컵과 물과 와인은/ 내 노래를 솟아오르게 한다/ 왜냐하면 동사는 원천이며/ 생생한 생명이므로-그건 피이다/ 그 참뜻을 표현하는 피,/ 그리하여 스스로 뻗어나가는./ 말은 잔에 피다움을, 피에 피다움을,/ 그리고 생명에 생명다움을 준다.”(네루다의 시「말」의 끝부분)

국가 원수가 아무리 외국어에 능통해도 국가를 대표하여 구사하는 공식 언어는 모국어를 써야 한다. 외국 순방길에 서툰 발음으로 방문국 언어를 자랑스럽게(?) 구사하는 것은 순전히 자국민을 깔보고 업신여기는 ‘왕’된 발상의 연장일 뿐이다. 그러고도 민주주의가 실현될 리가 없다. [말의 모성적 원천은] 피에 피다움을, 생명에 생명다움을 준다 하지 않았는가!

이동희<시인/문학평론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