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말들이 하늘에서 빨갛게 떨고 있다
하고 싶은 말들이 하늘에서 빨갛게 떨고 있다
  • 김동수
  • 승인 2017.04.13 1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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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수의 금요 전북문단 / 35.이소애(李素愛: 1943-)

정읍 태인 출생. 1994년 <<한맥문학>>으로 당선(시). 우석대학교 국어국문과(2001)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2002년 첫 시집 <<침묵으로 하는 말>>외 4권을 발간하면서가톨릭 전북문우회. 전북여류문학회장을 거쳐 현재 전주문인협회 회장을 맡아 지역문화 활성화에 이바지하고 있다. 전북여류문학상과 한국미래문학상, 중산문학상, 허난설헌문학상, 후백황금찬시문학상,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작가상, 전북예총하림예술상, 매월당문학상을 수상했다.

어둠 속 웅덩이의 말을

남 몰래 숨겨 놓았더니

시커멓게 타다 만 숯덩이일 뿐

하지 않는 말

참고 사는 말

어쩔 수 없이 한으로 숨 막혀

화석으로 남는다.

-<침묵으로 하는 말>에서, 2002

한 맺힌 영혼과 뜨거운 키스를 나눌

그날을 위하여 나는

쓸쓸하게 죽어가고 있어

-<상사화>에서, 2002

‘그날을’ 만나지 못해 ‘숨 막혀/ 화석으로 남아’ 침묵이 된다고 한다. 전하고 싶어도 전할 수 없어 ‘시커멓게 타다 만 숯덩이’ 그리하여 그의 말이 ‘쓸쓸하게 죽어- 상사화’로 피어 있다는 소통의 단절에서 그의 시는 비롯되고 있다. ‘시는 내 삶의 허기와 정신의 시장기를 치유해 갔으며 영혼의 전달자이기도 했다’(<<침묵으로 하는 말>>)는 그의 첫 시집 서문의 언급도 이같은 맥락에 다름 아니다.

태양이 바다 속 깊은 잠자리에 들다

하늘은 별들을 깨워

떠 먹어버린 시간들을 토해내듯

톡, 톡, 톡 한꺼번에 터뜨린다.

별빛은 생의 철문이 열릴 때의 열꽃

숨은 말들이 하나씩, 그러니까

유백색 달항아리 비워내고 힘을 얻듯

별들은 창 밖 산수유 잔가지에 매달린

열매처럼 더 빨갛게 떨고

-<하늘보다 별이 많다>에서, 2009

‘바다 속에 들어’ ‘숨은 말’들이 하늘에서 ‘별’이 되어 ‘톡, 톡, 톡 터지’는가 하면, ‘생의 철문’에 갇혀 있던 말들이 하나씩’ ’산수유 잔가지에 매달려- 빨갛게 떨고’ 있다고 한다. 그의 시적 공간이 지하(숯덩이, 화석)에서 ‘바다 속’에 들어 있다가, 급기야 하늘에 올라 ‘별’이 되어 ‘떨고’ 있는 치열한 생의 순환 과정이 다양한 시적 변용으로 세상과의 화해, 곧 자기동일성의 길을 모색해 가고 있다.

원통하고 분해도 떨어지면 똥이다

은하수 무리에 숨어서 숨 쉬면 별이 된다

똥줄 빠지게 매달려야 산다

반짝거려야 별이다

구린내 나는 하늘에서

떨어지면 똥이여!

내가 나를 붙잡고 살아야 하듯

-<별도 떨어지면 똥>에서, 2013

‘떨어지지 않기’ 위하여 그는 시방 ‘똥줄 빠지게 매달려 산다’ 무엇에 매달려 무엇이 되고자 ‘원통하고 분해도’ 매달려 있는가. ‘별’이 되고자, 별처럼 영롱한 하나의 ‘영혼’이 되고자 파편적 존재로 내몰린 변방의 언어가 저마다 반짝이는 ‘은하수 무리에 숨어’ 내밀하게 자신을 담금질을 하고 있다.

‘물고기는 물에서 살아도 물에 젖지 않는다’(<물고기는 물에 젖지 않는다>)는 오소독스한 그의 전언처럼, 현상에 매몰되지 않기 위하여 ‘구린내 나는’ ‘하늘에서’ 본래적 자아, 곧 순수 본질의 절대적 이데아를 지향하는 순애보적 열망이 아직 뜨겁다.

(김동수: 시인. 백제예술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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