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의 두 바퀴, 일과 가정
수레의 두 바퀴, 일과 가정
  • 홍용웅
  • 승인 2017.04.12 1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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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의 나이테가 쌓여갈수록 자주 느끼는 생각인데, 일과 가정은 두 수레바퀴 같다는 것이다. 이들 바퀴는 물(物) 자체로는 각기 왼편, 오른편을 차지하는 독립된 존재다. 하지만 기능적으로 볼 때 한쪽이 시원찮으면 다른 쪽도 제 역할을 못하게 되는 운명공동체인 것이다. 그리고 두 바퀴의 크기, 견고성, 구동성이 같아야 수레의 최고 성능이 나올 수 있다. 바퀴의 크기가 다르거나 한쪽 기능이 부실할 경우 수레의 원활한 작동을 기대할 수 없다.

 '일, 가정 가운데 뭣이 중한가?'란 질문은 어리석고 무용하다. 당연히 둘의 양립이 소망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자는 속성상 조화보다는 갈등 지향적이다. 일에 빠지면 가정을 등한시하게 되고, 가족만 챙기다 보면 직장에서 팔불출로 찍힌다. 그리고 이 둘 사이를 적당히 오락가락하다 보면 뭔가 열정 없는 인생을 사는 느낌이다. 인생살이에서 이 둘의 균형을 얻는 일은 하나의 연금술에 불과하다.

 D. H. 로렌스는 '무지개'란 소설에서 가정 속 남자의 위상을 무참히 깎아내린다. "사무실이 남자의 중요한 부분을 다 앗아가지요. 여자들은 사무실이 소화할 수 없는 나머지를 얻을 뿐이에요. 남자는 가정에서 어떤 존재일까요? 남자는 의미 없는 살덩어리, 놀고 있는 기계예요." 자괴감을 준다.

 대개 일은 치열함을, 가정은 온화함을 요구하기 때문에 한 사람이 상반된 역할연기를 완벽히 해내기는 쉽지 않다. 직장동료들 눈에 밖에선 화끈하고 집에선 자상한 전인(全人)처럼 보여도, 가족 내부자의 평가는 딴판일 경우가 많다. 직장이나 군대에서 종종 경상도와 전라도 사람의 기질이 대비되기도 하지만 이러한 인류학적 담론 또한 미심쩍은 것이다.

 여하튼 직장-가정 문제에 관한 한, 어떤 이론이나 인종적 특성에 의해 보편타당한 답을 얻긴 어려워 보인다. 결국은 각자의 직업, 사상, 입지 등을 고려하여 각기 균형점을 찾는 수밖엔 없을 듯하다.

 수레는 때로 질주하고, 때론 서행하며, 이따금 수렁에 빠지기도 한다. 한 바퀴가 고장 나면 다른 바퀴로 버티고 고쳐가며 정상궤도를 찾아야 한다. 직장에서 어려움을 당하면 가정에서, 가정 내 불상사가 생기면 직장에서 버틸 힘을 빌려야 한다. 직장-가정 간 상호원조와 치유력을 토대로 우리는 인생이라는 길고 험한 길을 완주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일과 가정은 우리에게 더없이 소중한 것이고, 일체가 되어 인생의 성패를 결정한다. 우리의 인격도 이들의 교호작용을 통해 빚어진다 하겠다.

 최근 들어 직장에 가정적 요소가 많이 가미되고 있다. 일부 기업들은 유연근무, PC 오프제(퇴근시간에 컴퓨터 전원을 꺼버린단다!), 출산휴가, 재택근무, 갭이어 등을 통해 '직장의 가정화'에 앞장서고 있다. 이 추세로 가면 머지않아 직장과 가정의 경계가 무너질 전망이다.

 정부는 월 1회 금요일 4시 퇴근하는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를 시행한다는 보도다. 경제통상진흥원도 유연근무제 도입을 고려하고 있다. 직원 행복과 성과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면 주저할 까닭은 없다고 본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전 직원이 주인의식으로 무장하는 것이 전제조건이다.

 일-가정의 황금비율은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는 줄타기 곡예사처럼 비틀거리면서 그것을 암중모색해 나갈 뿐이다.

 홍용웅<전북경제통상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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